100년전 영광읍을 바라보며...

이성천/ 자유기고가

2014-03-21     영광신문

18611919)

영광풍경 10곡병靈光風景十曲屛(水墨淡彩 170×473)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전 영광읍내의 풍경을 실묘사한 참으로 귀한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영광풍경 10곡병(, 호암미술관 소장)이 그것이다. 이 그림의 작가는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18611919)인데, 산수인물새를 잘 그렸고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시에도 재주가 있는 조선후기 화가이다. 그는 장승업에 이어 산수, 인물, 화조, 영모(翎毛) 등 모든 유형의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고종과 황태자의 초상화 제작에 발탁되기도 하는 등 궁중의 그림을 도맡아 그린 인물이다.

전통적인 화법에 따른 관념산수화를 주로 그린 그는 근대적 감각의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도 몇 폭 남기고 있어 주목되는데 그 중에서 특히 구 체화정(棣花亭.현 난원 사회복귀센터 상단부지)에서 내려다 본 우리 영광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이 바로 그의 현존작 중 최대 규모이면서, 조선조 화풍을 벗어나 근대화의 세계를 새롭게 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10폭 그림의 상단에 쓰인 발문(跋文)에 의하면, 그가 호남의 거부(巨富)였던 학천(鶴川) 조희경(曺喜璟) 형제(1)의 초대를 받아 1915(乙卯)영광지방에 40일간 머무는 동안 이 그림을 그렸다고 쓰여 있다.

마을 뒤쪽에 웅장하게 서 있는 우산(牛山)과 그 아래 펼쳐진 넓은 들판과 성곽(영광읍성), 초가집들이 현실감 있게 묘사되어 있고, 특히 깔깔한 느낌이 나는 작은 미점(米點)으로 골격이 뚜렷한 산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수법은 같은 해 심전이 그린 또 다른 실경산수화인 <백악춘효도(白嶽春曉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도 사용되고 있어, 심전이 우리나라의 산천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주로 구사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안중식은 세상을 떠나기 1년전인 19186,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단체 서화협회의 창립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조선화단에 마지막 한 점을 찍는다. 서화협회는 이후 민족의식을 갖고 일제에 대항한 미술단체로 한국근대미술사상에 많은 공적을 남기기도 했다.

한세기를 지내온 그의 이 작품, 영광풍경 10곡병은 과거 이곳 영광의 모습을 필름사진 못지않은 실경으로 비춰주고 있는데 100년전 영광읍 전경이 그야말로 여과없이 온전히 담겨 있다. 사실적이면서 깊고 부드러운 기운을 간직한 10폭 풍경화에서 당시 영광의 땅과 대기에 어린 정겹고 온화한 빛을 느낄 수 있다.

영광읍 일대의 풍광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오늘날의 영광사람들은 상전벽해의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형과 풍속이 변화되어 옛날의 모습을 어디에서나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 때의 풍광을 어렴풋이 상상해 봄 직하다. 오늘날의 모습 위에 그 옛날의 아름다운 풍광을 떠올려 보는 것도 향토에 대한 사랑을 가꾸는 방법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1) 당시 영광의 거부이자 서화를 좋아한 학천 조희경과 인곡 조희양 형제를 말한다. 학천은 박사라 하였고, 인곡은 寢郞(침랑)이라 하였다. 침랑은 陵墓(능묘)를 지키는 參奉(참봉)과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