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봄도 없이 오는 여름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별이 뜨면 같 이 웃고 별이 지면 같이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가수 고 백설희씨가 부른 가요 “봄날은 간다”이다.
생동치는 봄날의 생명력이나 활동성에 반해 “빛나는 꿈의 계절”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인 그 봄을 속절없이 보내야만 하는 마음을 표현한 가사이고 보면 이 노래는 젊은이들의 노래이기보다는 어느정도 세상을 살만큼 살아온, 나이가 지긋한 세대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노래다. 가는 봄이 아쉬워 거듭 되풀이되는 봄날의 애상! 젊은 시절을 덧없이 보내버린 까칠해진 나이에 맞이하고 보내야 하는 봄. 진달래, 모란, 배꽃, 살구꽃, 복사꽃, 오얏꽃....등 수많은 꽃들이 자신의 인생처럼 피었다 지는 봄날에 그 한없는 회한을 그려보는 전춘(餞春)의 애잔한 시상(詩想)이라니....
그런데 이 노래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시대적으로도 노랫말 내용과는 거리가 먼 후세대를 살아온 젊은 시인들부터 원로 시인들까지 어쩌다 모여않아 막걸리라도 한순배 나누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절을 불문하고 이 노래를 같이 부르는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연출해내곤 한다. 이는 5.16에 의해 짖밟혀버린 4.19의 꿈, 5.18에 의해 뭉개져버린 80년 서울의 봄 등 역사적 아픔과 아쉬움들을 이 노랫말 속에서 은유적으로 해석해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청춘을 바치고 목숨을 바쳐가며 부단히 노력했건만 그 꿈이 봄날의 꽃처럼 피어나려는 순간에 다시 짖밟혀버린 역사적 사건들...그런 사건들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절실하게 느끼는 시인들은 해마다 가는 봄을 아쉬워했을 것이고 누구보다 많은 시름을 앓게 했기에 그런 마음을 대신해주는 이 노래는 아직도 시인들 사이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 3절은 시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후벼판다.
열아홉 순정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날면 같이 웃고 새가 울면 같이울던/얄궂은 그노래에 봄날은 간다.
40년 넘게 혹독한 추위와 쓸쓸함이 짖누르고 있던 운현궁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고종 즉위 후 ‘대원군’이란 칭호와 함께 찾아온 ‘흥선’의 봄. 그의 봄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봄이 아니라 차갑고 추운 긴긴 겨울의 시련을 이겨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그 힘들고 고단했던 온갖 수모와 억압을 견디어낸 사람에게 하늘이 내련준 진정한 봄이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것. 그토록 수모를 견디며 힘든 세월을 보낸 끝에 맞이한 봄이었지만 운현궁(흥선대원군)의 봄은 고작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쓸쓸히 저물어버렸다. 삶이란, 인생이란, 권력이란 이리도 허무하고 덧없는 것을....!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은 권력투쟁의 끝에서 찾아온 운현궁의 주인을 봄에 견주어 이야기 했고, 또 시인 김소월은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라며 가는 봄을 읊조렸다.
그런데 금년 봄은 왠지 옛날의 그 봄과 같지 않음에 심상치가 않다. 불과 몇일 전까지만 해도 한겨울같이 추운 날씨였는데 느닷없이 초여름날씨처럼 기온이 급상승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여기 저기서 이상 징후들이 나타난다. 봄꽃의 개화시기가 평년보다 무려 14일이나 빨라졌고 전국에 동시다발로 벚꽃이 피어난 것은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칠산바다에서는 뱀장어치어를 잡는데 난대성 어류인 대구알과 대구가 무더기로 잡히는 기현상이벌어지고 있다. 이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이며 이런 기후변화는 이미 오래전 학계에서 예측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범으로 화석연료의 과다사용을 지목했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나라도 봄가을이 없어지고 여름과 겨울만 있는 거 같아”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영화도 과거 70년대에는 “허리케인” 같은 자연 현상에 의한 재해를 다루었는데 21세기 들어서는 “트모로우” 같은 인류의 과학문명이 만들어낸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에 의한 지구 온난화와 그에 따른 대 재앙의 경고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실재로 그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문명의 이기에 의한 이러한 현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것인가?
봄을 느낄 여유도 없이, 가는 봄도 없이 오는 여름이라니....
지는 꽃을 바라보며, 가는 봄을 느끼며 잃어가고 있는 현재에의 아쉬움과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들을 음미하며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나른한 봄이 정녕 없어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