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알프스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수 천년 동안 만년설(萬年雪)이 덮인 산봉우리는 언제나 짙은 구름에 가려져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깊은 산 속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되어 끝없이 이어지는 피요르드, 빙하가 만들어 낸 유(U)자곡(谷)을 타고 흐르는 물은 몇 개월동안 굽이굽이 대하장강(大河長江)을 이루며 마을을 지나고 논 밭을 적시며 낮은대로 낮은 곳으로만 굽이쳐 흘러서 어느덧 칠산바다에 이르고 드디어 바다의 제왕(帝王)이 된다.
구름속에 가려진 봉우리들은 만악천봉(萬岳千峰)으로도 모자라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고,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의 폭포는 또 몇이나 될까? 천인단애(千仞斷崖), 기암절벽(奇巖絶壁)은 금강산의 만물상(萬物像)에 견줄 바가 아니다.
영광 알프스, 이는 유럽의 몽블랑이나 마터호른, 호주의 써든 알프스, 뉴질랜드의 마운트 콕, 남미의 마추픽추, 시바의 여신이 산다는 인도의 히말리야, 중국 사천성의 장가계와 산악지형 그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예로부터 어염시초(魚鹽柴草)가 풍부하고 각종 물산이 넘쳐나는 오백(五白:쌀 면화, 누에, 소금, 눈)의 고장 영광, 동산서해(東山西海)의 지형구조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특수한 기후 조건과 자연환경에 의한 영광만의 독점성,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여유롭고 풍요로우며,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넉넉하기만 한 축복의 땅 영광이다. 그래서 영광은 신이 내린 땅이다.
영광에 사는 사람들 또한 신으로부터 선택 받은 사람들이고 필자(筆者)도 그에 속한 티끌 같은 일점(一點)에 불과한 존재지만 그래도 늘 영광인(靈光人)으로서의 무한 자긍심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런 중에도 늘 한 가지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면 그 것는 높은 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높은 산이 없으니 물이 부족하고 깊은 계곡과 큰 강이 없을 수 밖에...
그런데 아직까지 살아오면서 왜 그 걸 한 번도 볼 수 없었을까? 앞에 열거한대로 지구상 어느 곳 보다도 아름다운 알프스가 열광에도 있다는 것을...!
한 여름 장맛비가 몇일 째 쏟아지더니 저녁 늦은 시간부터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비가 그쳤다. 세상이 온통 빗물에 씻겨져 공기가 신선하다. 먼 산은 초록의 빛을 더해 더욱 가까워보인다. 눅눅하기만 했던 장맛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오니 모처럼만에 상쾌한 아침이다.
일찍이 서울을 향해 차를 몰고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서해안 고속도로 상행선에 올라 선 순간 나는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가 없어 갓길 안전지대에 차를 세웠다. 동쪽(대마면)을 바라보니 짙은 구름이 마을까지 내려와 깔려 있을 뿐만 아니라 가늠 할 수 없는 높이까지 온통 구름천지다.
그 때 마침 떠오르기 시작 한 아침 햇살이 하늘과 구름의 경계를 분간해준다. 인근 고창 지역에 속해있는 고성산에서부터 차츰 남쪽으로 이어지는 월랑산 태청산, 장암산, 불갑산, 삼각산, 군유산, 월암산으로 이어지는 저 거대한 산맥, 아침 햇살이 비춰주는 구름의 높이만큼 높아지고 깊어진 저 산들의 내막은 안데스나 알프스, 히말라야보다도 더 신비에 쌓인 채로 그 내막을 헤아릴 수 없다.
“아-우리 영광에도 저런 알프스가 있었구나.” 여름 날 아침의 한참동안을 그 장엄한 감동에 취해 넋을 잃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문득 중당(中唐)의 시인 가도(賈島)의 절구(絶句) 한 편이 생각난다.
홍진(紅塵)을 뒤집어쓰고 사는 속인(俗人)은 무엇 때문에 심산유곡에 자신을 맡기고 숨어 사는 선인(仙人) 같은 은자(隱者)을 찾아갔을까? 난세(亂世)의 선약(仙藥)을 구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치세(治世)의 묘약(妙藥)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은자(隱者)를 찾아서
松下文童子(송하문동자:소나무 아래 동자승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스승은 약초 캐러 가셨다 하네)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분명 저 산 속 어딘가에 계시지만)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다만 구름이 깊어 그 곳을 알 수가 없네)
천신만고 끝에 그 깊은 산 속까지 찾아가서 무언가 해답을 찾으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만나고자 했던 은자(隱者:인생의 참 스승)는 더 깊은 산 속 구름 속으로 아주 숨어버려 만날 수가 없다. 이 쯤 되면 깊은 한숨이나 원망이 저절로 터져 나올 법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절구의 시적(詩的) 화자(話者)는 스승을 만나지 못한 뒷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다.
짙은 구름 속에 숨겨진 골짜기와 봉우리를 바라보며 스스로 해답을 찾은 것일까? 아니면 약초가 있는 곳을 알아냈거나 그 청정무구의 자연환경에 스스로 동화되어 속심(俗心)을 털어버린 것일까?
영광 알프스. 뜬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눈을 감아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도 치세의 명약이나 난세의 선약을 키워내는 신선 같은 우리의 스승이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