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自書)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2014-10-06     영광신문

오래지 않아 무너져 내릴 듯 한 위태한 몸짓으로 승승장구 하던 당신의 기개와 자존심은 그리도 하얗게 소각 된 집념이었습니까?

미치도록 몸살을 앓던 긴 세월-칠산바다 모래벌의 발자욱처럼 흔적도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러나 당신의 눈은 숙명처럼 잃어버린 과거를 소유했었고, 묵직한 반항으로 하늘가에 머무는 비구름을 사랑했으며, 자학 하듯 허물을 벗기 위해 용트림 하던 당신의 영혼은 인생 홍역을 치러왔던 젊은 생에 바친 고고한 집념만큼 까닭 모를 연민에 밤을 새우고....

무구한 세월 속에 흠집으로 얼룩졌던 종이벽, 새김질 하듯 퇴색하고 조각난 기억의 문서들...당신의 마른 손자국은 바람끝처럼 매운 칼날에 망가져내렸고 봉숭아 빛 붉은 가슴은 저녁노을처럼 침잠하는 아름다움으로 그렇게 넉넉하였습니다. 그리고 속살에 넘치는 그 너그러운 눈물은 아침 빛을 녹이기엔 너무 길기만 하였던 어둠이었습니다.

보여도 보이지 않던 그 무형(無形)의 실체를 억척스럽게 연모했던, 어쩌면 잡초처럼 질긴 가슴을 가졌고 당신의 미래처럼 부드러운 언어를 소유 했었던 당신의 모습.

묵은 장롱 속에서 기어나오는 독한 소독약처럼 그렇듯 겹쳐진 타인의 모습으로 잊어버리기로 한 지난 세월 속에서 당신은 또 다시 불쑥 선명한 푯말로 솟아나오곤 했었습니다.

수평선과 두 줄기 평행선을 사랑했던 고집스런 그 순수함 만큼 당신의 육체는 거부(拒否)의 몸짓으로 영원한 종말을 예고 했었고 그렇게도 끈적하고 고독한 유배자의 아픔을 당신은 단 한 순간에 삼켜버렸습니다.

미련이란 유치한 숨바꼭질을 계속이란 가정으로 귀속시키기엔 당신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고 또 쉽게 허물어져버렸습니다. 이성이란 오만한 주사위로 안배해놓았던 약속된 시간 속에서 당신의 눈은 이미 미래를 예감했었고 말라가는 잡초의 줄기처럼 당신은 가위질 하듯 조금씩 한정된 우리들 시간의 줄기를 잘라내어 갔습니다.

내게 있어 젊음이란 허무와 그 끝없는 공백을 영화감상처럼 충분히 낭비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이성과 열정의 나날들, 적절한 위안처럼 후회란 자기 변명과 현실적인 이중성을 직시하기엔 당신은 너무나 후덕한 말초신경 안정제를 투여해주곤 했었으며 어제와 오늘 같던 긴 과거 속에서 맑은 물 속의 햇살처럼 투영되어지는 당신의 전라(全裸)는 더는 아무 것도 잡혀지지 않는 그림자로 못 박듯 고정되었던 그 칼자루를 내게 양보했었고, 그래! 돌아서는 당신의 그 왜소하고 초라한 어깨 위에 나의 시선이 머물 때면 난 일종의 거역하기 어려운 안도감에 부끄러운 아이처럼 많은 인파 속으로 몸을 감추기에 맥없이 전전긍긍 했었습니다.

어느 겨울 밤이었던가? 부서지는 자신을 돌보기엔 너무 늦은 귀가였고 흩어진 옷매무새로, 망가진 눈빛으로 망가진 미래를 포기하며 조심스런 불안으로 떨고 있을 때 당신의 준비되지 않은 행동을 구실 같은 변명 삼아 그리도 지루하고 얄팍했던 달걀 껍질 같던 무언의 약속을 그 겨울의 끝에서 깨버렸습니다.

알에서 부화되어 나오는 생명처럼 신선한 감동과의 만남이었고, 굳이 시인하진 않아도 언제부턴가 당신은 내게 있어 결코 드러나지 않는 빈 자리였고 헤진 무릎처럼 젖은 입술처럼 가깝고도 먼 이방인으로 안개 같은 한숨의 의미로 남겨져야 했으니까요.

비겁한 도망자처럼 난 자신과의 철저한 약속에 화가 났었고 멈추어버릴 것 같던 심장의 고동 소리에 판단력을 상실한 모멸감으로 질식할 것 같은 그 초점 없는 눈동자를 원망했었지요.

하지만 바람()의 의미를 부여해 줄 거목처럼 울창한 인연이란 절대적 숲()의 사실을 인식하게 해 준 당신. 삵고 낡아진,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가는 손 때 묻은 허름한 추억처럼 당신은 그렇듯 내 젊음의 동반자였고 선한 친구였고 변함 없이 향기나는 잡초였습니다.

영원하게 그리움으로 남을...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인생은 한낱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잠자는 영혼은 죽음이고/만물의 본체는 외양대로만은 아니란다/인생은 실재! 인생은 진지한 것!/무덤이 그 목표는 아니다-중략-예술은 길고 세월은 날아간다-중략-이 세상 넓은 싸움터에서/인생의 노영 안에서/말 못하는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싸움터에 나선 영웅이 되거라!-중략-아무리 즐거울지라도 <미래>를 믿지 마라!/죽은 <과거>로 하여금 그 죽음을 묻게 하라!/활동하라 - <현재>에 활동하라!/가슴 속에는 심장이 있고, 머리 위에는 신이 있다!-후략-롱펠로우 인생찬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