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孤吟)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세상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2015년도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태초로부터 있었던 것이고 오늘로 이어져오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삶과 관계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고 인간 존재와 더불어 저마다의 의미 가치가 부여된 것이다. 우리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창조란 것도 창작이라는 것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과학 기술 문명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몰랐던 것을 발견해내고 무지로부터 하나 하나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원래 있었던 그대로를 향해 가야 하는데 사실은 많이 튀틀려져 가고 있다. 제대로 알지 못한 데서 발생되는 오류이다. 남과 북이 싸우는 것도, 민족과 민족이 충돌하는 것도. 국가와 국가가 전쟁을 하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다 알지 못한데에서 오는 뒤틀림현상이다. 그리고 이 뒤틀림의 반복이 모든 면에서 부족하기만 한 인간으로 하여금 끝없이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뒤틀림의 오류가 없이도 인류의 문명이 지속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어릴 적 너와 나는 둘도 없이 다정한 사이였는데 언제부턴가 그 무엇에 의해 우리의 관계가 이토록 뒤틀리고 벽이 생겼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랐을 때 나는 반성을 할 수 있고 그 뒤틀림의 원인을 제거하여 너와 나의 관계는 다시 회복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인류가 향유하는 문명수준이란 것이 우주적 질서에 견주어볼 때 한 점 티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남보다 잘났다고, 돈 많다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많이 배웠다고 우쭐댈 일이 아니다. 그런 오만과 편견, 독선, 우월주의야말로 가장 무지한 행위이다. 그 것은 곧 자연의 섭리와 우주의 질서를 거스르는 첫걸음인 것이다.
生應無暇日(생응무가일) 死是不吟詩(사시불음시)
살아서 한가한 날 결코 없으리 죽어야만 시를 짓지 않을테니-맹교
吟安一箇字(음안일개자) 撚斷幾逕髭(연단기경자)
한 글자를 꼭 맞게 읖조리려고 몇 개의 수염을 배배 꼬아 끊었던가.-노연양
羲皇樂俗今猶在(희황락속금유재) 看取春風酒杯間(간취춘풍주배간)
옛적의 좋은 풍속 지금도 그대로 있으니 봄바람과 술잔 사이를 살펴보라.-오상
비록 배는 고프고 삶은 고단해도 옛날의 많은 시인들은 인간이 모르는 것을 제대로 찾아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모양이다. 요즈음은 시인들도 왼쪽 새끼를 꼬듯 뒤틀림의 줄타기 선수 대열에 대부분 동참을 하고 있지만 비록 무명(無名)의 저 밑바닥일지라도 제대로 생각해내고 제대로 찾아내기 위해 고음(孤吟)에 몸부림치는 시인들도 더러는 있다.
문학도 어차피 사람의 문제라서 여러가지 뒤틀림이 발생할 수 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궁극적인 문제는 나라는 존재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제대로 된 시어를 발굴해낼 수 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며, 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나와 사회와의 관계, 나와 자연과의 관계 나와 우주와의 관계 등....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절대적 존재이며 그 절대성 때문에 나는 외로운 존재이고 그 외로움은 곧 그리움으로 발전한다.
인간은 그러한 절대 고독 속에서 늘 무엇을, 또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존재다. 인간만이 아니다. 꽃도, 나비도, 꿀벌도 지상의 만물 모든 것의 내면에는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고, 또한 모든 것들로부터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질이나 문명을 통한 편안함 편리함을 지상제일주로 추구하는 시대에도 누구에게나 아픔과 외로움은 있을 것이다. 그런 정서들을 자연환경과 더불어 작품화 해내는 작업이 시인의 일이다. 쉽게 쓴 시는 생명력이 없다. 뼈를 깎는 고뇌가 없이 즉흥적인 감흥이나 일차적 감정만을 표현한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라 조잡한 언어의 나열에 불과 할 뿐이며 오히려 언어에 의한 공해일 뿐이다.
주전자의 물이 끓어서 견딜 수 없을 때 그 뚜껑을 밀어 올리듯 시도 마찬가지로 감정의 비등점에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 비로소 잊혀진 소중한 가치나 모르는 그 무엇을 찾아낸다면 그 것이 바로 생명력을 지닌 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줄의 시를 쓰더라도 늘 유언(遺言)을 남기는 것처럼 써야 한다.
그것이 시에 대한 예의이고 독자를 향한 시인의 자세이며 또한 작가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고 모든 이치를 제대로 알아내는 일이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일이다. 사춘기 승냥이가 그 끓는 피와 열정을 참을 수 없어 밤새 울부짖듯이 시는 그렇게 써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시인들처럼 한 글자를 꼭 맞게 읖조리려고 몇 개의 수염을 배배 꼬아 끊어내듯이 고음(孤吟)한다면 세월호 참사도, 파리의 테러도, 의정부의 화재도, 어린이집 교사가 어린 아이에게 주먹을 날리는 일도...그 어떤 불행한 사고도 더 이상 발생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있었던 것은 우주의 질서 속에 지금도 그대로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시인의 말처럼 봄바람과 술잔 사이를 잘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