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2015-08-17     영광신문

해수면 위의 방랑자, 바다의 노숙자이거나 아니면 지금도 바다에서 살아 숨쉬며 영생의 길 위에서 가르침을 몸으로 설파 하는 아테네의 철학자, 해와 달을 이정표 삼아 세상을 떠도는 고행의 수도승...등 등

요즈음 바다를 떠다니는 해파리의 상징성은 필자의 왜소한 상상력만 동원해도 참으로 다양하게 묘사 될 수 있다.

둥그럽고 매끈한 삿갓을 둘러 쓰고 그 안에 내장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함으로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감추는 것이 없고, 여러개의 길다란 촉수를 몸 뒷쪽으로 늘어뜨린 채 조류를 따라 느긋하게 유영하며 끝없는 부침(浮沈)을 되풀이 하는 여유로움이라니.... 그리고 그 자신만만함과 강인함이라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자유시를 썼고 또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시집을 발간 했던 안서(岸曙) 김억이 그 최초 시집을 위의 해파리를 상징화 한해파리의 노래라 제목 했다.

같은 동무가 다 같이 생의 환락에 도취 되는 사월의 초순 때가 되면 뼈도 없는 고깃덩이 밖에 안되는 내 몸에도 즐거움은 와서 한도 끝도 없는 넓은 바다 위에 떠놀게 됩니다.그러나 자유롭지 못한 나의 이 몸은 물결에 따라 바람결에 따라 하염없이 떴다 잠겼다 할 뿐입니다. 볶이는 가슴의, 내 맘의 설움과 기쁨을 같은 동무들과 함께 노래 하려면 날 때부터 말도 모르고 라임도 없는 이 몸은 가엾게도 내 몸을 내가 비틀며 한갖 떳다 잠겼다 하며 볶일 따름입니다. 이 것이 내 노래입니다. 그러기에 내 노래는 섧고도 곱습니다.-김억 해파리의 노래 전문-

바다는 이 세상을, 해파리는 그 세상에서 희노애락에 부대끼며 사는 자신의 삶을 비유한 것이라고 김억은 자서에서 밝혔다. 그리고 춘원 이광수는 이 시집 서문을 통해 인생에는 기쁨도 많고 슬픔도 많다.특히 오늘날 흰 옷 입은 사람의 나라에는 여러가지 애닲고 그립고, 구슬픈 일이 많다. 이러한 <세상살이>에서 흘러나오는 수 없는 탄식과 감동과 감격과 가다가는 울음과 또는 우수움과, 어떤 때에는 원망과 그런 것이 모두 우리의 시가 될 것이다.

이천만 흰 옷 입은 사람! 결코 적은 수효가 아니다. 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뭉치고 타는 회포를 대신하여 읊조리는 것이 시인의 직책이다.

우리 해파리는 이 이 천만 흰 옷 입은 나라에 둥둥 떠돌며 그의 몸에 와 닿는 것을 읊었다. 그 읊은 것을 모은 것이 이 해파리의 노래. 해파리는 지금도 삼천리 어둠침침한 바다 위로 떠돌아 다닐 것이다.그리고는 그의 부드러운 몸의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울음을 한 없이 읊을 것이다.

어디, 해파리, 네 설움, 네 아픔, 무엇인가 보자.

계해년 늦은 봄 흐린 날에 춘원

해파리의 노래, 김억의 자서 , 춘원의 서문의 내용을 보면, 일제 치하에서 활동하던, 같은 시인으로서 온 몸으로 일제에 항거하고 작품으로 민족 의지를 표현했던 한용운, 심훈, 이육사, 김소월, 윤동주...등에 비하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래도 이 때 까지는 나약하고 문약하나마 그런대로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과 아픔을 어느정도 대변 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유능한 두 작가는 후에 극단적 친일 작가로 자신과 자신의 문학에 대한 형질 변경을 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가운데 죽지 않는 유일한 생물이 해파리라고 한다. 90년대 카리브해 연안에서 발견된 어떤 해파리는 먹이가 부족하거나 외부 환경이 나빠지면 촉수와 바깥쪽 세포를 몸으로 흡수해 초기 세포 덩어리로 돌아간다. 물리적 자극만 없다면 성체가 어린 개체로 돌아가는 과정을 되풀이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세포의 이형분화로 설명하고 있지만 노화와 죽음을 극복한 작은 생명체의 능력은 인류에게 놀라운 불가사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관찰 할 때는 그저 물결 따라서 피동적으로 떠다니며, 뇌도 없고, 자생 능력도 없고 가장 나약한 동물로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해파리에겐 어느 누구도 감히 범접 할 수 없는 무서운 독이 촉수에 들어 있고, 자신에게 어떤 위협을 가할 요소가 감지 되면 머리를 숙여 깊이 잠수 할 줄 아는 두뇌와 주체적 행동 능력도 갖추고 있다.

또한 해파리는 수심 4000m 이하의 극한 조건에서 살 수 있는 생명체로도 유명하다. 태양 에너지가 아닌 지구의 환원형 무기물로 생명을 유지하는 생체 메커니즘도 경이롭다. 지구에 최초로 출현한 생명체도 해파리라고 한다. 1930년대 북미에서 수백 마리의 해파리가 선명히 찍힌 화석이려진 해면동물의 화석보다 훨씬 이전인 5~6억 년 전이라고 판정했다고 한다.

김억이나 이광수 발견됐는데, 많은 지질학자들이 이 화석을 연구한 결과 당시까지 지구상 최초의 생물로 알나 해파리의 외형만 묘사 하여 나약하고, 억압 받고 주체적이지 못한 아픔과 슬픔의 이미지로 형상화 한 것은 당시 해파리에 대한 지식과 연구 부족으로 그럴 수 있었으리라 이해 되지만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의 삶과 현실을 해파리의 외형에 빗대어 그렇듯 나약하고 체념적인 상징으로서 우리 민족의 현실과 연결해 해파리를 작품화 한 것은 문학적 서정성은 담보해 낼 수 있었다 치더라도 민족의 독립 의지를 견인해 내지 못하고, 민족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학적으로는 실패작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올해로 광복 70주년, 지금 우리 민족의 모습은 과거의 잘못 된 문학 작품 속의 해파리가 아니다. 어둠침침한 밤 바다를 정처 없이 떠 다니거나 물결에 휩쓸려 방향 없이 부침하는 그런 해파리가 아니다. 강인한 의지와 명석한 두뇌, 그리고 힘. 그런 능력을 갖추었기에 어느 세력이 위협해도 느긋하게 대처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리하여 해파리의 영생처럼 영원히 흰 옷의 혈맥을 이어갈 수 있는 진짜 해파리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해파리의 힘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직 대통령 딸이자 현직 대통령의 동생이란 자가 서슴치 않고 친일 망언을 되뇌이다니....

아무래도 금년 여름 날씨가 너무 더웠나보다.

지금 열광 앞바다 어디를 가도 여유롭게 수면을 유영 하며 결코 경거망동 하지 않는 해파리의 진짜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