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신문화를 높이기 위해 인문학당 운동을 적극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

2016-04-18     영광신문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큰 차이점은 하늘의 존재와 마음의 작용에 관한 것인 것 같다. 서양철학은 과학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원인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밖으로 나타난 행동을 중시한다. 마음은 뇌의 작용으로, 하늘은 우주 자연의 순환 작용으로 본다. 반면에 동양철학은 인간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을 학문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하늘은 우주 삼라만상 모든 존재를 관리하는 영적인 존재로 본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하고 마음에 심어준 천명을 삶의 축으로 삼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그래서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君子가 되지 못하기에(不知命 無以爲君子也) 큰 인물은 천명을 알고 실천하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우리나라는 구한말 서양으로부터 신식교육이 들어오고 인재육성 차원에서 학교들이 설립되면서 체계적인 과학교육이 시작되었다. 과학은 인간의 주체인 마음과 자연의 주재자로서의 하늘을 부정한다. 과학이 마음과 하늘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그동안 배워왔던 소학, 격몽요결, 명심보감 등 수신修身 과목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게 되면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제도권 교육을 받는 20년 가까이 마음과 하늘을 배움의 영역 밖으로 놔둘 수밖에 없었다.

초중고교와 대학 등 제도권 교육에서 마음과 하늘이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어른들조차도 삶에서 마음 관리와 하늘 공경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마음과 하늘이라는 말은 참으로 낯선 말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윗사람 아랫사람, 큰 역할 자 작은 역할 자 등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지켜야 할 예의禮儀와 법도法度를 모르다보니 무례無禮와 무시가 일상화되고 갈등과 충돌, 자기 몫 찾기는 날로 성행하고 있다.

옛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군자君子는 천명을 실천하지 못할까봐 항상 하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군자는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고 성인의 말을 두려워한다. 반면에 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하므로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인을 함부로 대하고 성인의 말을 모멸한다고 한다.

군자君子는 요즘으로 치면 정부의 장차관이상,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국가단위 기관장, 큰 기업의 CEO, 국가기능을 맡아 수행하는 단체의 대표자, 지역사회의 다양한 지도자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군자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부여된 천명天命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대인大人을 찾아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성인聖人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천명을 성실히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양철학에서 하늘은 영적 존재로서 항상 나와 함께 있다. 하늘은 삼라만상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 보듯 환하게 보고 있으며, 심지어 인간들의 마음 씀씀이까지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유학儒學에서는 학문하는 목적을 자기를 닦아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에 두고, 방법론들로 성의정심誠意正心, 효제충신孝悌忠信, 인의예지仁義禮智, 내성외경內誠外敬, 거인유의居仁由義, 극기복례克己復禮, 의리지변義利之辨 등 다양하게 마음을 관리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한국사회가 세계를 이끄는 주도국가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정신문화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당연히 하늘을 공경하고 마음을 관리하는 정신문화라야 한다. 물질문명은 시대가 바뀌면서 크게 달라져 왔지만, 정신문화는 하늘과 마음에 관한 것이기에 시대가 지나도 그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2500년 전에 공자께서 편찬하고 말씀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지금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왜 사람들 간에 관계가 갈등하고 대립하고 분열하는 등 갈수록 나빠지는가? 낮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쁜 점을 고치는 극기克己를 못하기에 낮아지지 못한다. 더 많이 갖고 우월하려는, 직책은 높지만 인품은 소인小人인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나눔과 배려를 못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고, 남과 상생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전국 시군구별로 작은 인문학당을 다수 설립해 공부하는 작은 인문학당 운동을 적극 추진해야 할 때다. 인문학당 운동은 인성진흥 차원만이 아니라 창조경제의 성장에도 핵심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