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이며 어떤 가치인가?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2016-06-27     영광신문

독재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평화이다. 자신이 멋대로 휘두를 수 있는 독재의 칼날이 평화의 여유로움 때문에 무디어지기 때문이다. 피지배자들의 혀 끝에 느끼는 식감은 언제나 독재자가 선심 쓰듯 배급해주는. 쓰지만 보약으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씹어삼켜야 하는 아편 같은 마성과 몽롱함에 길들여져 있어야 한다.

독재자에게 있어 평화는 그가 지배하는 인민들이 독재의 쓴 맛을 느끼게 하는 극약인 것이다. 그래서 인민들이 자유와 인권과 개인적 존엄성이 정당화될 수 없도록 언제나 집단적 이념으로 치장해서 획일화 할 수 있는 긴장이 고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장 고조의 명분이 필요 하고, 그 확실한 명분을 만들어내야 할 적대적 상대가 있어야 한다.

북한의 세습정권에 있어 그의 주적은 자본의 상징인 미국도 아니며, 남한의 우익집단도 아니다. 분단 상황에서의 남북 화해와 평화 무드가 지속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적이며 공포의 대상인 것이다.

지난 국민의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남과 북의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적대적 긴장관계가 해소되려 하자 불안을 느낀 북한에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서해안 총격전을 야기 시켰다. 동해안에선 금강산 관광이 진행되고 있는데 서해안에선 교전이라니 ㆍㆍ

그 후로도 북한 정권은 필요할 때마다 국지적 도발을 지속해왔으며,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급기야는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메가톤급 긴장을 유발시키며 권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가장 큰 힘과 무기는 사실 핵이 아니라 분단의 155마일 철조망인 것이다.

그러한 북한 정권의 독재는 그나마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에 내부적 문제와 외적 요인의 작용에 의해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인간 역사 이래 모든 지배권력이 그랬듯이.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독재는 엉뚱하게도 자유와 평화로 위장된 사회에서 교묘하게 심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집단과 집단, 계층과 계층간에 가로 놓여진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럴싸 한 대의적 명분과 본질적 문제 제기를 구실 삼아 공리주의적 이념으로 무장 된 종교 이론이나, 집단적 숙명주의, 공동운명체주의는 인간이 발명한 최악의 정신 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 고차원적 정신과학은 독버섯이 외형을 화려하고 아름다게 치장 한 채 속으로는 치명적인 맹독을 품고 있듯이, 그런 논리들은 그럴싸 한 이념과 매혹적인 공익주의로 치장하고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약점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 약점으로 발목을 잡은 채 그 이념의 틀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구속한다.

그래서 그 것들은 인간 구원의 이상(理想)이 아니라 지배의 수단에 불과 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이 두려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이념의 노예(사실은 노예적 삶을 인식하지 못 한 채)가 되어서 그 달콤한 복종의 마약에 취한 나머지 자신의 존재가치보다는 말도 안되는 관습과 통념에 매달린 채 미로 속을 헤메고 있는 것이다.

관습이나 규범이라는 통념의 얽매임 속에서 나는 없고, 한 시대나 집단의 공동체적 구성원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우리 속의 나는 누구이며 어떤 가치로 존재 하는가?

허먼 멜빌이 쓴 소설 백경의 주인공 이슈마엘은 지상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수부가 되기 위해 포경선에 오르던 날, 배 위의 마스트에 기대앉아 우수에 찬 독백을 한다.

"나는 결코 손님이나 선장은 되지 않겧다. 그저 아름다운 선원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듯 이슈마엘은 스스로의 의지로 주체적 삶(자유) 을 선택했고, 그 소설을 통해 미국사회는 개인주의적 민주주의를 확립시킬 수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환멸을 느낀 은행원 자리를 털어버리고 타이티 섬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시작함으로써 그동안 전체주의의 관습 속에 매장되었던 스스로의 감옥에서 벗어나 명확한 자기 삶의 가치회복과 더불어 숭고한 영혼이 깃든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다.

사회적 규범이나 공리주의적 가치를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시대나 집단, 국가나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되 경도된 이념이나 집단주의에 무작정 나를 팔지 말자는 뜻이다.

나의 주체성도 없이 어떤 이념이나 명분에 휩쓸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독재와 지배원리를 뒷받침해주는 어리석은 일이며, 스스로 노예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될테니까.

""가 지나치면 독재자나 똠방이 되고, 우리나 공동체에 무장정 흽쓸리면 꼭두각시가 된다.

""에 대한 무한 신뢰, 무한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 속에서 나의 존재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나의 가치가 발현되고, 다수의 나가 우리라는 참다운 공동체를 형성하여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