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힘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선생님께
지우가 무리였나 봅니다. 책 내용만 줄줄 이야기 하고 느낌은 적네요.
솔직히 엄마 55%, 지우 45% 과제입니다. 대회 출품은 선생님께 맡기겠습니다.”
영광 초등학교 1학년 이지우 학생이 출품한 전국 독서경진대회 독후감 원고 앞면에 쓰여 진 지우 어머님의 추신문(追信文)이다.
이 글을 보는 순간 심사자는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글 속에 함축되어져 있는 엄마라는 존재의 숭고함에서부터 어떠한 명작보다도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을 유발시키는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우 어머님! 걱정 마십시오. 지우가 느낌이 적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용을 줄줄이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느낌입니다. 느낌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내용들을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지우는 아직 초등학교 일학년인데...지우와 지우 어머님께 무한한 갈채를 보냅니다.
독후감 내용은 다른 학생들보다 잘 썼다거나 뛰어나지 않은 일반적 수준이었지만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노력이 특별하고 절실하기에 필자는 주최 측에 부탁하여 상품이나 상금은 없더라도 별도의 상장을 만들어서 특별상을 지우 어린이에게 수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영광초등학교에선 야여타 학교에 비해 세배가 넘는 무려89편을 응모해주었다. 이는 작품 수준을 떠나 전체 작품에서 거의 똑 같이 나타나듯이 독서를 통한 깨달음과, 자기반성, 그리고 자기 성찰의 기회로까지 발전 되고 있으니, 독서 경진대회의 이만한 성과가 또 어디 있겠는가? 독서 경진 대회의 주 목적은 글 잘 쓰는 특정인 몇 명에게 상을 주는데 머물지 않는다.
영광 초등학교 학생들이 보여 주듯이 독서의 진정한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또 그 행위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독서를 함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작품 속에 그대로 함몰되어버리지 않고 작품에 반하는 이론을 제기 한다거나, 자기 생각을 주장할 수 있고 나아가 작품에서도 놓쳐버린 인간 내면의 심리 묘사까지 밀도 있게 그려낼 수 있음은 참으로 놀라운 효과이다. 원작의 수준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표현은 독서를 하는 우리 학생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독서는 곧 뛰어난 문학작품을 창작해낼 수 있는 탄탄한 밑거름이 된다.
어린 학생들이 확고한 자기의 꿈과 이상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우연치 않은 계기나 동기 유발이 중요하다.
필자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아침 등교를 해서 수업이 오전 시작되기 전 친구들과 노닥거리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이거 네가 한 번 해봐라” 하면서 검인이 찍힌 원고지 몇 장을 건네주었다. “웬거냐”고 물었더니 몇 일 전 국어선생님이 ”호남예술제“ 글짖기 응모작을 오늘까지 써오라 했는데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그냥 백지 원고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당시 음악, 미술, 문학, 무용...등 예술 전 장르에 대한 예술제를 매년 광주일보에서 호남지역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아주 규모가 큰 예술제였다.
하여 필자는 “그래 내가 한 번 써볼게” 하고 즉석에서 글을 썼는데 수필도 아니고 소설이라 할 수도 없고, 일기문도 아니며, 편지글도 아닌, 그저 글짖기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 할 수 없는 그런 글이었고, 제목이 “종소리”였으며, 줄거리는 새벽 종소리를 듣고 나가 일을 하고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온다는 농촌 부모님들의 하루 일상을 그린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다.
그렇게 원고를 제출하고 난 후 나는 원고를 제출했다는 기억조차 하지 못 한 채 한 달 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아침 국어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에 갔는데 상장과 상품을 건네주시며 “장하다. 너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으니 앞으로 열심히 써봐라.”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무엇을 하겠다는 뚜렷한 꿈이나 이상이나 인생 목표가 없었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상을 받고 나서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작가의 길을 가겠노라는 확실한 인생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즐거이 그 길을 가고 있다.
독서는 어쩌면 인류가 새롭게 추진해가고 있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이나 서비스 관광 산업인 제 4차 5차 6차 산업보다도 더 소중하고 절실한 가치인지도 모른다
편리함, 자극적인 것, 선정적인 것, 단순함,..등 성장기 학생들의 올바른 정서함양에 반하는 너무 많은 것들에 노출되어져 있는 이 시대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독서는 그나마 최고의 자율학습이 아닐 수 없다.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과 함께 독서하는 소녀상이 전국 어느 학교마다 세워져 있었는데 그 까닭은 독서의 교유적 가치를 반증함에 다름 아니다.
이지우 학생과 그의 어머님께 다시 한 번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