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와 분노 그리고 가짜진짜들의 이중성
강구현/ 시인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나는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댔다.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이다. 암청색 피오르드와 도시 위로 피가 불길처럼 날름거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해서 길을 갔고, 나는 두려움에 떨며 홀로 뒤쳐졌다. 나는 대자연으로부터 엄청난 절규가 끝없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누구나 다 아는 그림 ''절규''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절규를 그린 소회의 글이다.
절규란 어떤 감정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있는 힘을 다하여 절절하고 애타게 부르짖는 것''이다
그런 절규는 왜 일어나는가?
진실이 왜곡되고, 가치가 전도되고, 걷잡을 수 없는 참담함이 가슴을 짖누를 때 인간은 절규를 하게 된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필자는 할머니의 외침이 단순한 기자회견이 아니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절규임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기자회견을 두고 어떤 방송인은 누군가가 ''정대협' ''정의연'' 활동에 대한 거짓 정보를 할머니께 제공해서 기자회견을 하게 했다.''며 정대협 음모론을 제기 했다.
그 방송인이 이야기 하는 것을 방송을 통해 보면서 필자도 순간적으로나마 뭉크의 절규 같은 전율을 느꼈다. 그 방송인의 말대로 기자회견문을 누군가 대필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자회견 내내 할머니가 정대협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실제의 일들조차 누가 각색해준 것일까? 그 방송인에게 묻고 싶다.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큰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었다.
''아빠 이거 내가 쓴 건데 한 번 읽어봐''
딸이 내민 노트에는 짤막한 동화가 다섯편 적혀 있었는데 초등학생이 썼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썼다는 생각을 하며 은근히 딸의 재능에 대한 기대도 했다.
''참 잘 썼구나. 감동적이다. 앞으로도 계속 써 봐라. 훌륭한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뒤 은근한 기대감으로 딸에게 물었다.
''새로 쓴 동화 있느냐?''고, 그런데 딸에게선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더 이상 동화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에 썼던 동화를 담임 선생님께 보여드렸는데 읽어 본 담임선생님 왈
''너 이거 어디서 보고 배꼈지?''
''아니요''
''그럼 네 아빠가 써준 거지''
''아니요 제가 썼는데요''
''거짓말 하지 마 다 아니까''
끝까지 믿어주지 않는 선생님 때문에 딸은 더 이상 동화를 쓰지 않았다.
무조건 타인을 믿기만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타인을 의심만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이며 스스로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된다.
타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상상력이 진실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별 문제가 안되겠지만 아전인수격으로 자기만의 가치관에 짜맞춘 그 상상력이 만에 하나 진실을 왜곡한 것이라면 이는 그 상대에 대한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고. 그 상처가 주변까지도 전이되는 결과를 낳게 되며 결국은 그 상상력을 발휘 한 자기 자신이 가장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세상엔 미래가 없다.
세상 모든 자연물에는 진짜진짜만이 존재하는데 유일하게 우리 인간에게만 가짜진짜도 공존한다,
그리고 그 가짜진짜가 진짜진짜를 억압하고 짖누르기도 한다.
처음엔 진짜였는데 언제부턴가 그 진짜들은 외형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가짜의 옷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진실과 정의, 희생과 봉사...등 온갖 명분으로 치장을 한 가짜 진짜들은 화려한 언변,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권력의 식성에 맞는 이념의 행동대장이 되어 시대를 주름잡고 있으며, 온갖 논리로 법을 악용하고 심지어는 그 법 위에서 군림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는 자신들만의 안위와 명예와 부의 축적과 권력 장악에 혈안이 되어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렇다.
조국사태나 윤미향 의혹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국민들이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념에 경도 돤 진보의 논리 앞에 그 외의 다양성들은 여지없이 묵살 된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해 가는 글로벌 경쟁의 시대.
속칭 진보들의 이념만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되며 여타의 다양성들이 소외되는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순위의 상층부에 속할지는 모르지만 사회적 ,정신적 가치로는 아직 후진국 수준에 불과하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며 판을 치는 시대의 참담함이라니...
진정한 진보는 세상을 자신들의 이념에 꿰맞추려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다양성과 함께 호흡하며 보다 나은 미래의 가치를 창출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