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海霧) -소리로 보는 풍경, 풍경으로 듣는 소리-
강구현 시인
시간이라는 사랑의 천적은 사랑의 초심을 변질 시키기도 하지만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마약이며 묘약이기도 하다.
한 때 목숨이라도 바칠 것 같았던 사랑도 시간이라는 악성 종양에 의해 퇴색되고 변하는 게 사랑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상처를 잊어버리고 또다른 사랑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야누스적 속성을 지닌 것이 본질이다.
엄일히 따지자면 그 야누스적 속성이 인간 정서의 본질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불안전한 존재인 것이고, 그 불완전한 속성 때문에 진짜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라도 내 스스로를 달래고 자위할 수 있는 구실이 필요해서 난 일상과는 동떨어진 일종의 궤변(?)이 필요했다.
애시당초 내 삶이 그러했듯이 아직도 내 인생항로는 안개 첩첩 싸인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더불어 사랑 또한 꿈에서나 그려보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었기에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나는 미치도록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사랑은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다.
도시의 아파트에 살려면 관리비를 내야 하듯이 사랑에도 관리비 없이는 지속적 유지가 불가능하다.
''그런 논리에 바탕을 둔 사랑이라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강변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과거 사랑과 이별의 순애보를 담은 신파극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었기에 극적으로나마 인간이 염원하는 감성을 충족시켜주고자 하는 헤로인이었을 뿐 인간의 삶을 보편적으로 표현하는 논픽션은 아니었지 않았던가?
유월 초순부터 일찌감치 시작된 장마가 두 달 가까이 지속되더니 오랫만에 뜨거운 햇살이 지표면을 달군다.
더불어 그동안의 장마 때문에 상승세를 타지 못했던 칠산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니 드디어 칠산바다가 장엄한 장면을 연출해낸다.
저 멀리 낙윌도, 송이도, 안마도 너머에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한 해무(海霧)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짙게 피어난 바다안개는 느낄 듯 못느낄 듯한 편서풍을 타고 서서히 육지로 진격해온다.
그 몽환적 자욱함 속으로 잠겨드는 산과 들 그리고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의 의식의 몽롱함.
동물적 쉼호흡에만 내 서글픈 육신을 의지한 채 눈을 감는다.
눈 감으면 들려오는 소리 소리들, 그리고 그 소리들을 통해 보이는 풍경들.
내 유년의 사랑과 아름다웠던 장면이 나타나고,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가없는 하늘 그림 같이 고요한 데
물결은 쉴 새 없이 남실거립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소리치며 뜀뛰며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모래성 쌓는 아이,
조개껍데기 줍는 아이, 마른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웃으면서 한 바다로 보내는 아이,
모두 바닷가에서 재미나게 놉니다.
ㅡ중략 ㅡ
바다는 깔깔거리고 소스라쳐 바서지고,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사람과 배 송두리째 삼키는 파도도
아가 달래는 엄마처럼, 예쁜 노래를 불러 들려줍니다.
바다는 아이들과 재미나게 놉니다.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습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길 없는 하늘에 바람이 일고
흔적 없는 물 위에 배는 엎어져
죽음이 배 위에 있고 아이들은 놉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텁니다''
그렇게 타고르의 시의 풍경들이 보이고, 이제는 도덕과 윤리의 관념을 초월한 채 초자연적 감성으로 만나 정담을 주고 받는 먼 훗날의 나와, 내 삶의 동반자들의 모습도 보이고...그렇게 해무 속에서 멈추어버린 시간은 이제 사랑과 삶의 신선한 선약(仙藥)이 되어 나의 존재의미와 또 다른 가치를 부여해준다.
서해의 미네랄 듬뿍 머금은 해무 속에서 목욕을 하며 생의 온갖 자양분을 공급 받은 산들이 깊은 쉼호흡을 고르며 고개를 내밀어 알알이 영글어가는 곡식들과 나무들과 산야초들의 싱싱함을 풀어놓는다.
사랑과 삶의 선약으로 잠시 머물렀던 해무 속의 시간이 지난 뒤 오랜 장마와 지루한 일상에 찌든 때들을 적당한 바람과 비로 깨끗이 씻어주고 지나간 태풍 ''바비''의 속삭임이 살갖을 어루만져주는 아침의 영광, 영광은 신이 내린 땅이 아니라 신이 선택한 곳이며 그 속에서 허구적 사랑과 실존적 삶의 가치를 조회롭게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영광에사는 사람들은 그래서 모두가 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광의 자연환경에 저절로 동화되어 건강한 육신과 맑은 영혼을 간직한 축복받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