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뜬 10월의 마지막 밤 ㅡ베이비부머들의 다시 찾은 청춘기ㅡ
강구현 시인
학창시절 이후 우리가 만난 것은, 헤아려보니 42년만이었다. 그런데 그 날이 공교롭게도 보름달이 뜬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오는 동안 소식마저 끊어져 어쩌다 한번씩 각자가 머릿속에 떠올려 본 이름들과 얼굴들이었는데, 어찌어찌 해서 한 두명이 연락을 취하다 보니 그 연결고리가 확장이 되었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의기투합이 되어서 그렇게 오래 전 세월 저 편에 아직도 퇴색되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젊은날의 추억과 정을 토대로그리 쉽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지난 여름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필자가 손수 지어서 바다에 띄워놓은 바지선은 숙식이 가능하도록 주방시설은 물론 한겨울에도 춥지 않게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이 그런대로 갖추어져 있다.
일종의 수상가옥 형태인데 일월정(日月停), 가음조대(歌音釣臺)라 제(題)하여 당호(堂號)까지 걸어놓았으니 수상가옥치곤 제법 낭만적인 격까지 갖춘셈이다.
고급 펜션에 비해 다소 불편하긴 하겠지만 현장에서 직접 낚시도 할 수 있고, 칠산바다의 수평선과, 낙조와, 일출과, 갈매기들을 비롯한 온갖 물새들과, 조용히 밀물지는 저녁 조수의 수면 위로 뛰노는 앙증맞은 치어들과, 그외의 온갖 풍경들과, 정겨운 소리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유명 관광지의 화려하고 편리한 펜션이나 리조트에 견줄 바가 아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해상 리조트(?)에서 만나 40년 세월의 이야기들로 날이 새는줄 모르고 3박4일을 편안하게 허비할 수 있었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싱싱한 산낙지에 몇순배 술잔이 돌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린 청춘 시절로부터 올해로 갑년(甲年)을 맞이한 저마다의 지나온 인생 여정이 가을밤 하늘의 헤일수 없는 별들만큼이나 많은 사연으로 쏟아져나왔다.
''주변을 돌아볼줄 알고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로부터 버림받는 첫세대가 바로 베이비붐 세대''라 했던가?
자영업 덕분에 그나마 아직까지 경제소득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는 두 친구는 그런대로 열정이 남아 있었는데 공직에서 물러난 나머지 세 친구의 모습에선 위의 베이비부머들에 대한 정의가 빈 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존심 삭여가며, 온갖 눈치 보아가며 오로지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왔건만, 그렇게 자녀들 올곧게 성장시키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 없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했건만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아내도 작식들도 나를 귀찮아 한다"는 것이다.
관세청 고위직까지 올랐다 퇴직한 친구는 그래서 서울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기가 불편해 충청도 부여에 내려와 자치단체에서 제공해주는 공간에서 혼자 생활 하게 된지가 벌써 몇 개월째 되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우울증까지 앓고 있단다.
그런 저런 사연들을 저마다 가슴에 안고 조금은 설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큰 기대도 하지 않았던 만남, 억압받고 얽매이고, 균제되고, 절제 일변도의 직장을 퇴직하면, 그 숨 막힐 듯한 사회구조의 틀 속에서 해방되면 보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그 설계도 위엔 암울한 회색빛만이 더욱 무겁게 덧칠되어져 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우리들의 3박4일은 그래서 기대이상이었나보다.
"친구 덕분에
3박4일 자~알 놀고
맛있게 먹고 좋은 추억 만들고 힐링 하고 왔네
Good!"
"3박4일 했드만
마음은 풍족한데
체력이 바닥났어
다시 낙지 먹어야겠다"
"마실 때는 좋았는데
깨고 나니 속만 쓰리네.
건강 잘 챙기세."
"즐거웠고, 죽어있는
감성을 깨우게했던
행복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네~~
흐르는 강물 처럼
또 자리 만들어 가끔씩 보세~~
멀다하지만 기꺼이
달려감세~^^"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나이가 들고, 세상이 변하고, 제 아무리 문화가 바뀌어도, 우리들 청춘시절 그 불타던 열정, 청운의 꿈들은 이미 스러졌어도
그래, 벗들이여!
우리가 존재하는 한, 너의 기억 속에 내가 있고,나의 기억 속에 네가 있고, 우리들 기억 속에 우리 모두가 뚜렷이 남아 있는 한,
그래 친구여!
우리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을 청춘일세. 사랑일세. 인정(人情 )일세.
보름달 뜬 금년(2020. 경자년) 10월의 마지막 밤. 그 밤의 그 바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