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야 이 할매가 시도 쓸 줄 알어야”
“우리 군서초가 1등” 아그들도 선생님도 학교도 다 좋아
군서초등학교에 다니는 할머니 학생들이 뒤늦게 배운 한글로 시집을 냈다. 왼쪽부터 박향임·김순덕·이선숙·노복례 할머니와 함께 복례 할머니댁 마당에서.
지팽이라도 짚고 가방 짊어지고 댕겨 볼랑게
“기역니은도 모르고 자기 이름 석 자도 못 쓴 우리가 그래도 학교라는 데를 발딜어 갖고 선생님이 이렇게 이름 석 자 쓰게 하고 국어책이라도 어느 정도 떠듬떠듬 읽음서… 말이 닿든 안 닿든, 뜻이 맞든 안 맞든 우리 말 나오는 대로 쓰라 해서 썼어.”
군서초등학교를 다니며 글을 배우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내려간 다섯 할머니들의 시가 모여 시집 한 권이 됐다. 이번 겨울방학이 지나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할머니 5명이 그 주인공이다. 관절 수술로 입원 중이라 함께 자리하지 못한 장화녀 할머니를 제외한 할머니 네 분을 만나봤다.
같은 반 친구 노복례(81), 김순덕(78), 장화녀(76), 박향임(73), 이선숙(72) 할머니는 서로 돕고 나눠가며 늦은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 막 글을 깨우쳤는데 시는 또 어떻게 써야 하나 처음엔 막막했지만, 누군가 한 명이 쓰기 시작하고, 첫 글자가 써지고, 첫 문장이 나오자 한 편, 두 편 쌓이면서 시 쓰는 재미도 늘었다. 시집에는 7,80년을 살아오며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 느지막이 시작한 공부에 대한 설레는 심정들을 모은 90여 편의 작품이 담겨있다.
“급식해주제, 날마다 우유 나와서 간식하라고 주제, 아침이면 학교 버스가 집 앞에 와서 착착 실어가제, 택시 불러서 태워서 보내제, 이런 호강이 어디가 있어.”
할머니들의 대화는 학교 자랑, 선생님 자랑 그리고 공부 이야기로 가득하다. 할머니들에겐 연필, 공책 같은 학용품부터 관절이 안 좋으신 학생들을 위해 전기장판에 의료기까지 마련해 준 군서초가 최고다.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신경 써주니 고마움만 늘어간다.
“그런 조건은 좋은디 우리가 공부를 못해서 그것이 아쉽지!”
“금방 잊어부러. 웃줄 읽고 아랫줄 보고 또 웃줄 읽을라면 기억이 안 나부러. 고놈 또 복습해서 또 갈치고 또 갈치고 해도 또 잊어부러. 그러니 선생님 애 많이 녹아나제.”
금방 배운 것도 금방 잊어버리는 할머니들에게 똑같은 것을 몇 번이고 가르쳐야 하는 우리 선생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갈까. 밥이라도 근사하게 대접하고 싶은데 밭에 널린 상추 이파리 하나도 받질 않으시니 속상하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도 계산을 못 해가지고 돈이 넘어가는지 나한테 들 넘어오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살아왔어. 그냥. 그랬는디 학교를 간다고 이 나이에 발딜어 갖고 이것만큼 아는 것만 해도 내가 아주 최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지금.”
배우지 못한 것을 한으로 안고 살아왔기에 할머니는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 수십 번을 읽어도 여러 번 배워도 뒤돌아서면 잊어 버려 갑갑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1학년 때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풀 줄 몰라서 책가방 짊어지고 영광 농약사까지 찾아가서 물어보면서 공부했다. “아니 그래도 배웠다고 1학년 때보단 쪼~끔 낫더라고. 이제는 농약사까장은 안 가도 될 정도는 돼.”
구구단도 대문짝만하게 붙여놓고 방구석에 문제집도 쌓아놓고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졌지만, 문제집 글자들은 어찌나 자잘한지 조금만 보고 있으면 금방 눈이 침침해지는 것이 애석하다. 그래도 잘난 것은 나누고 못한 것은 보태며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스럽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물든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질문을 떠듬떠듬 읽고 삐죽한 글자로 답을 적는다. 아들은 “엄마 가방만 쥐고 댕겨도 괜찮한 게 바람 쐬러 그러고 왔다갔다만 하소”라고 말하지만, 젊은이들보다 더한 노력과 열정으로 문제집을 편다.
“선생님들이 다 훌륭해. 우리 군서초는 전남에서 제일 1등이라고 생각허요. 아그들이나 선생님들이나 모든 것이 다 나무랄 것 없어요. 열심히 가르칠라고 노력허고 우리도 열심히 배워보겄다고 노력해보고 그래도 안 따라 주요만은. 시도 힘닿는데 까장 쓸 계획이고 우리 다섯이 건강한 몸으로 6학년 졸업하는 그 날까지 같이 졸업 타는 것을 기대해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