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R PDR의 고뇌는 끝났는가?
강구현/ 시인
-분단이라는 구조모순나 외세라는 주변모순에 편승한 권력모순은 더 이상의 진보를 포기한 이율배반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부터 성장해온 NL과 PD 세력들에 의해 정치권력이 장악된 대한민국은 현재 분단이라는 구조모순이나 외세라는 주변모순과 더불어 스스로의 가치와 정당성을 부정하는 권력모순의 심각성을 극복해야 할 위기상황에 직면해있다.
"어떻게 하면 신식민주의적국가독점자본(천민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제3세계 노동자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외세에 의한 주변모순과 분단이란 구조모순을 극복하고 민족주권회복과 남북통일을 위한 민족주의는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
체게바라나 로자룩셈부르크 같은 세계적 혁명가들을 롤모델 삼고, 심지어는 완전한 민족주귄 회복을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막스레닌 의 혁명철학, 볼세비키 혁명사, 주체철학등을 탐구하고,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까지 두려워하지 않는 사생결단의 일념으로 상징적 통일의 꽃을 북한으로 보내고...
그렇듯,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민중해방을 위해 순도 높은 고뇌와 치열한 투쟁의 결과로 군부독재를 종식 시키고 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세력들은 드디어 광회문 촛불(민중)혁명을 기반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1982학번을 필두로하는 전대협, 한총련 세대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권력으로는 그들과 같이 해 왔거나 앞으로도 공동운명체처럼 같이 가야 할 세력들이 국회의원보좌관, 국회사무처, 임명직 정부조직등 의정과 국정을 결정하는 요지에 두루 포진되어 굳건한 카르텔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숭고하기까지 했던 이념과 인간해방에 대한 열정과 고뇌는 과거와 달리 권력장악과 동시에 멈춰버렸고 오히려 지속적 권력 유지를 위한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권력남용, 도덕적 윤리적 타락, 이율배반, 아전인수격 자기논리주의ᆢ등 자기부정적 오류와 또 다른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건으로부터 줄지어 터져나온 일련의 충격적 사건들이 그 반증이다.
검찰인사 협의 과정에서 불거진 박범계 법무부장관의 "왜 반대편에 서려하는냐"는 신현수 정무수석 패싱 관련 발언은 과거 1992년 PK와 TK 출신 검사들이 부산시 초원복집에서 만나 "우리가 남이가"라고 했던 음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에의한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은밀하게 진행된 것이었다면 현 정권의 사법노농단이나 국정농단은 각종 매체를 통한 억지 정당성 혹은 대중이 눈치채지 못할 설계된 음모론을 퍼뜨리는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
‘음모론’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서강대 전상진 교수는 저서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은 종교나 이데올로기처럼 강력하다’고 했다. 권력자가 통치의 수단으로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하지만 이에 저항하는 음모론도 있다고 한다. 약자나 피지배자도 저항이나 항의의 수단으로 음모론을 활용하는데 본질적으론 똑같다. 가장 위험한 유형으로 중세에 횡행했던 ‘마녀 사냥꾼’ 유형인데, 종교재판관은 누군가를 마녀로 지목할 때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녀로 지목당한 사람이 자신이 마녀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황당한 경우다.
조국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 ‘검찰이 지난 총선에서 여당의 총선 패배를 예상하고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위한 밑자락을 깔았다’고 한 주장이나, 김어준 씨가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냄새가 난다”며 배후설을 주장한 사실이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본 것을 확인했다”고 한 거짓말등이 음모론의 대표적 유형이다.
그렇게 음모론을 퍼뜨려놓고도 그 것이 거짓으로 드러날 때 그들은 간단한 사과문 몇 줄 내보내거나 함구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측면에서 불 때 NDR PDR의 미래를 향한 더이상의 순결한 고뇌는 희미한 역사 기록의 한 페이지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남북 문제에 있어서도 남북 긴장완화와 평화기반 구축이라는 과거의 수준에서 한발짝도 나아기지 못한 채머물고 있으며 오히려 북한으로부터 뒤통수만 얻어맞고 있을 뿐이다.
어느 정권이나 정책의 오류가 있었고, 누구나 실수가 있고 실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오류와 실언과 실수가 정치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오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면 그에 대한 구차한 변명보다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반성해야 하며 두 번 다시는 그 되풀이가 되지 않토록 노력해야 한다, 만약 그 것이 실언이나 실수가 아닌 계획적인 것이었다면 이는 어느 소설의 한 대목처럼 "좋은 대가리를 좋지않게 굴리는 것은 나쁜 머리를 나쁘게 굴리는 것보다 더 흉악한 짖"이 된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정치적권력에 대한 욕심은 권력이나 정치의 속성이다,"
"현재 우리나라 보수들은 과거 자신들 맘대로 했던 것을 빼앗겼으니 얼마나 배가 아프겠나?"
현 집권세력들이 이런식의 자기 합리화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면 그 또한그들이 자랑하는 광화문 촛불 혁명을 스스로 부정하는 또 하나의 자기 모순에 빠져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