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현 기념공원을 시작하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41주년이다. 광주민중항쟁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인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에 항거했으며,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해 폭력적 진압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당시 국내언론 통제로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그 참상을 세계에 알렸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희생자에게 하는 보상 및 희생자 묘역 성역화가 이뤄졌고, 1997년에 '5·18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1997년부터 대한민국 정부 주관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광주민주화운동이 41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발생 원인과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가 분명한데도 역사 왜곡과 왜곡 보도가 계속해서 제기되는 현실에 대해 그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신군부는 집권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부 주도로 전통 미디어를 통해 폭도들의 반란이라고 왜곡하였다.
특이하게도 2002년 이후에는 민간단체들의 북한군 개입 등 새로운 왜곡이 제기되었다. 이들은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활용해 대중화를 시도하면서 보수집단들의 억지주장으로 점화되었다. 특히 우익 인사들이 필사적으로 5.18을 공격하면서 이념논쟁의 제물이 되었다.
5·18은 이념적인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살아있는 시대정신의 결과이다.
숭고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오월 영령의 뜻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언제나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이길 기원하자.
영광청년회의소가 올해도 박관현 열사비 참배 행사를 개최했다. 그리고 우체국과 터미널 앞에 박관현 추모관을 마련해 박 열사의 추모 분위기를 군민들과 함께했다.
1953년 불갑 태생인 박 열사는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어 모진 고문과 장기단식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영광의 영웅이다.
이제는 영광의 영웅을 기념하는 기념관 건립을 시작해야 한다. 불갑생태공원을 ‘박관현 기념공원’으로 개명하여 영웅의 흔적과 업적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