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색될 수 없는 감성의 기억들

강구현 시인

2022-10-11     영광신문
강구현 시인

나는 오늘도 술에 취해 너를 마신다.

 

폭염 속에 익어온 계절의 향기여!

구비구비 흘러 온 강물의 여정(旅程)이여!

고요한 호수의 수심(水深)에 드리워진 쓸쓸한 달빛이여!

갈대숲 휘돌고 가는 긴 휘파람 소리여!

우주 공간 어디쯤 흐르고 있을 내 청춘의 그림자여!

파르르 몸서리 치는 세월의 파문(波紋)이여!

 

너를 겨냥했던

내 비수(匕首)의 끝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지.

한여름 무더위 속 살쐐기가 돋아나듯

가슴을 파고드는 이 가을 저녁의 통증이여!

 

칠산바다 저 너머 어느 곳으로부터

사시사철 늦바람(편서풍)에 밀려오는

내 안의 풍랑(風浪)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자책의 성장통,

미지(未地)의 그 곳까지 흘러갈 미완(未完 )의 몸부림인 것을ㆍㆍㆍ!

 

어둠의 풍요를 파괴하는 아침의 폭력은

"등대불"마저 잔인하게 삼켜버리고,

드디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햇살 아래 드러나는

전라(全裸)의 허무(虛無).

그래도 세상은

고정된 채널에 마비된 의식으로 배가 부른지?

오늘도 어지럼증 없이 무탈하구나.

 

이제는 더 이상 부르지 않으리라!

 

꽃은 피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혁명의 노래.

그래, 혁명은 언제나 또 다른 혁명을 요구하는 것.

원래부터 참담한 절망과 아픔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우리는 더욱

죽는 날까지 그 아린 상처만은 간직해야 한다.

 

우리들의 희망을 울부짖던

목메인 노래,

꾸밈음 하나 없이 불렀던

그 노래,

너를 위해서,나를 위해서,

우리들 모두의 내일을 위해서

젊은 가슴 빠개지도록 외쳐 부르던

그 열정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부르던 노래의 순간만은

절대로 이기(利己)의 속성(屬性)에 물말아먹지 말아야 한다.

필연적으로 귀속(歸屬)되는 속성(俗性)이 지배하는 세상일지라도

우리는

당당하게 그 것을 거부해야 한다.

 

영원한 다카포(Da Capo: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연주 하라)만이 요구되는

우리들의 노래에는

그래서 피네(Fine:곡을 끝냄)가 없다.

 

세월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메아리조차 없이 사라진 그 옛날의 함성들...

바보처럼 목숨도 걸었던 사랑노래,

남겨진 것 하나 없이

가느다란 한 줄기 바람에도

이리 저리 나뒹구는 가을낙엽처럼

삶은 그렇게 쓸쓸한 것이지만

그렇게 저물어 갈 인생의 뒤안길에서

그래도 조용히 되뇌어볼 노래 한 소절 남아있으리니.

 

폭염 속에 익어온 계절의 향기여!

구비구비 흘러 온 강물의 여정(旅程)이여!

고요한 호수의 수심(水深)에 드리워진 쓸쓸한 달빛이여!

갈대숲 휘돌고 가는 긴 휘파람 소리여!

우주 공간 어디쯤 흐르고 있을 내 청춘의 그림자여!

파르르 몸서리 치는 세월의 파문(波紋)이여!

가슴을 파고드는 이 가을 저녁의 통증이여!

 

사랑하라!

사랑하라!

영원히 퇴색되지 않을 청춘의 감성으로

인생을 사랑하라!

삶을 사랑하라!

가을비 내리는 이 계절의 쓸쓸함도, 아픔도

술잔에 담아 노래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