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햇살 맑은 날의 해 질 무렵 2
강구현/ 시인
2. 눈 시림
우리나라 서남 해의 일부에 해당되는 영광군 염산면 앞바다는 이름 하여 염산 골이라 부른다.
영광군 무안군 함평군 신안군이 접경한 이 지역은 해마다 음력 1월이 되면 실뱀장어 잡이 배들이 수 백 척씩 떠서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곳으로, 밤이면 저마다의 배들에서 켜 놓은 불빛으로 인해 마치 거대한 수상도시를 연상케도 한다.
유달리 이곳에 실뱀장어 잡이 배들이 많이 몰리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영광군 염산면 옥실리 향화도와 무안군 해제면 도리포가 마치 병목처럼 마주하고 있는 안쪽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는 함평만이 있어 빠른 유속 때문에 물살에 휩
쓸려 다니는 실뱀장어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음력 1월 초부터 3월 말까지 실뱀장어잡이 어장이 형성되는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은 날은 거의 작업을 할 수가 없기때문에 실제 작업 일수는 불과 30일도 정도이며 이 기간 동안 어부들은 평균적으로 약 2 천여만 원의 고소득을 올린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물살이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사리 때에는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너 나 없이 바짝 긴장을 하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동료들과 잠깐 이야기할 여유조차 없다.
그러나 물발이 잦아드는 조금 물때가 되면 사고의 위험도 없고 작업 시간에도 쫓기지 않기 때문에 주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그물을 담궈 두고 한 배에 모여서 작업 도중 건져
올린 갖가지 싱싱한 생선들을 안주하여 느긋하게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작업 성과에 대한 이야기나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로 한껏 여유를 부릴 수도 있다.
실뱀장어 잡이란 일종의 안강망 어업 형태로써 그물 속으로 들어온 온갖 잡어들 속에서 말 그대로 실처럼 가늘고 작은 뱀장어 치어를 골라내는 작업이다.
나머지 잡어들은 대부분 버리게 되는데 이때 어부들이 던져 주는 잡어들을 쪼아 먹기 위해 갈매기들은 손을 내밀어 낚아채면 얼마든지 잡을 수도 있을 만큼 배의 가까운 곳까지 다가오기도 한다.
때론 갈매기들을 놀리기 위해 장난삼아 복어를 던져 주면 저만큼 떨어져서 유영하고 있던 갈매기들이 어김없이 날아들고, 던져 준 고기가 먹어서는 안 될 복어(갈매기들은 복어를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임을 알고는
“에이 장난이구먼” 하는 투로 “깍. 깍. 깍”
몇 번 짖어 대면서 더 이상 놀리지 말라는 듯 복어를 던져 준 어부를 힐끔 쳐다보고는 별다른 불평 없이 저만큼 물 위에 내려앉아 진짜 먹이를 던져 주길 기다리곤 한다.
실뱀장어잡이가 절정에 이르던 어느 봄날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사릿발 거센 물살도 넘기고 화사한 봄 햇살이 유난히도 눈부신 음력 3월 어느 날이었으리라.
바람 한 점 없는 수면은 온통 거대한 수정판을 깔아 놓은 듯 고요했고 따사로운 봄 햇살에 나른해진 나는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간밤 작업 도중 골라 놓았던 망둥이 몇 마리를 구럭에서 꺼내 물 위로 던져 주자 예상했던 대로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배 주위로 몰려와 서로 먹이를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다.
나는 이 틈을 놓칠세라 미리 준비해 둔 공기총을 들고나와 방아쇠를 당겼다.
“탕”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수정판처럼 고요하던 수면 위로 전율 같은 금이 가면서 갈매기 한 마리가 몸을 비틀며 물 위에 나동그라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토록 고요했던 수평선이 갑자기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있었던 수천수만의 갈매기들까지 일제히 나의 배 주위로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이 많은 갈매기들이 모여드는 것일까?”
헤아릴 수 없이 날아든 갈매기들은 수면 위에 나동그라져 몸부림치는 동료 갈매기의 죽음을 보며 나의 머리를 쪼아대기라도 할 듯이 낮고 어지러이 날며 울부짖는 것이었다.
“아차”
그 때서야 나는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았고, 하나의 생명체가 그 수명을 마감하려는 순간의 처절함이란 봄 바다의 수면 위에 반사되는 봄 햇살보다도 더 눈이 시리다는 것을 알았다.
차마 뜬눈으로 직시할 수 없는 죽음의 실체를 보았으며, 인위적인 힘에 의해 생과 사가 엇갈리는 한 찰라의 가슴이 저려옴을 처음으로 체험한 것이다.
약 10여 분 동안이나 처절하게 울부짖던 갈매기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하늘 끝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꺼번에 날아오르더니 그 날 이후 3일여 동안은 한 마리의 갈매기들도 인근의 바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찰라(刹羅)에 지나지 않는다.
그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경계의 이쪽(生)에서 바라보는 저쪽(死)의 풍경은 왜 그리도 뜬눈으로 직시할 수 없을 만큼 눈이 시리고 가슴이 아린 것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