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햇살 맑은날의 해질무렵 3회

강구현 시인

2023-01-02     영광신문
강구현 시인

2.적설(積雪)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었는데 막상 동생을 잃고 나니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울었다 맘껏 울었다.

나의 이 눈물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밥 한 숟갈 먹지 않았다.

잠 한 숨 자지 않았다.

밤낮으로 깡소주만 마셔댔다.

안주도 없이, 병째로 소주를 들이키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8남매의 장남인 나로서는 동생의 죽음 앞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그 마음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일과 눈물을 흘리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가슴 미어터질 것 같은 아픔의 감정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일주일동안 밤 낮으로 그러는 나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 같은 마음으로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같은 마음으로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던가?

잠시 집에 다니러 왔다가 소식을 전해 듣고 직장으로 복귀를 포기한 채 나의 이런 아픔을 끝까지 옆에서 지켜봐준 내 친구, 백우마저도 그 일주일동안을 무거운 침묵으로 내 곁에 있으면서도 미치다시피 술만 마셔대고 있는 나를 저지하지 않았다.

외지에 나가 살던 동생들이 오고 병원에서의 사고사라는 단정 하에 여러 가지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난 잠 한 숨 자지 않은 채 술만 마셔댔다.

동생의 시신을 영광 종합병원 영안실에 안치 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 장성에 있는 국과수에서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

결과는 혈전이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일주일만에 정신을 차리고 영안실 밖으로 나와 보니 세상천지가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동생이 영안실로 옮긴 그 날부터 지금까지 눈이 내리고 있다

비틀거리는 나의 어깨를 잡아주며 백우가 말해주었다.

지금 쌓인 눈만 해도 50센티가 넘는다.

영광종합병원 영안실, 그 무덤 속 같은 지하실에서 나는 놀랍게도 감정과 육체의 신비로움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일주일동안을 밥 한 끼니 먹지 않고 잠 한 숨 자지 않고 소주만 마셔댔는데도 약간의 현기증만 있을 뿐 몸도 마음도 말짱했다.

오히려 머릿속은 더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머리가 맑아질수록 죽은 동생에 대한 생각은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

-진정한 슬픔이 주는 인간의 초능력이란 말인가?”

몹쓸 것,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나도 오래비 노릇 한 번 제대로 할 수 있었을텐데,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저 새하얀 눈처럼 새로운 삶의 도화지 위에 나무도 심고 꽃도 피워낼 수 있 었을텐데...”

하필이면 동생이 출산을 하는 날 그 산부인과 원장은 병원과 산모들을 후배 의사에게 맡겨 두고 중국엘 갔을까? 원장만 있었어도 동생한테 그런 일은 없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목울대가 치밀어 오른다.

동생을 화장 해서 화순에 있는 불문사에 봉안하기 위해 가고 있는 버스 안에는 고요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형언 할 수 없는 아픔에 내 눈에서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백우가 나의 손을 가만히 감싸주었다.

그래도 감당할 수 없는 이 아픔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불문사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자락에 드리워진 겨울날 오후의 햇살은 유난히도 투명하고 처연했다.

동생의 그 쓸쓸한 넋을 불문사에 혼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의 창가로 붉으스름 겨울 저녁 빛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남평의 드들강 얼음장 위에선 날선 바람이 어디인지 모를 먼 곳을 향해 눈가루를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 풍경들과 더불어 더욱 가슴이 아리고 저리다.

위에서 솟구친 신물이 정수리를 찌른다.

그 해 겨울의 적설은 이 땅에 새로운 생명, 자신의 흔적 하나 남겨둔 채 버거운 삶의 굴레를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간 가엾은 넋의 새하얀 비단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