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당 이흥규의 고향 마을의 전설 기행

안마도 당산봉의 전설

2023-02-06     영광신문

전국의 어느 마을이나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큰마을에는 당산나무가 있다. 이 당산나무는 사람들의 쉼터요, 화합의 장소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며 정월에 당산제를 지냈다. 특히 바닷가 어촌마을에서는 어부들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당제나 용왕제를 지내는 것이 출어의 첫 행사였다. 이처럼 당산제는 일반적으로 모든 마을에서 행해온 행사지만 안마도(鞍馬島) 당산제는 기이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제사 방법도 특이하다.

아주 오랜 옛날 안마도 동촌마을에 신씨(申氏)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할머니가 밭에서 일하고 밭 가 잔디밭에서 쉬다가 잠시 졸았는데 꿈에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한 씩씩한 장군이 나타나

나는 당나라 장군인데 한 번도 전쟁에 출전을 못 하고 죽어서 영혼이 떠돌다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이 섬이 내가 탄 말을 닮아 북쪽의 산 너머 선창 가에 와 있으니 나를 이 산봉우리에 묻고 매년 설날이면 농악으로 풍악을 울리고 제사를 지내주오. 그리하면 이 섬에 닥쳐오는 모든 재앙을 막아주겠소

하고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방금 꾼 꿈이 생시에 있었던 일처럼 떠올라

! 요상스런 꿈을 다 꾸었네?”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일러주었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산 너머 바닷가로 가보니 갯가에 이상한 궤짝 하나가 떠밀려와 있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상자를 열어보니 상자 안에 어른 한 발쯤 됨직한 긴 머리털 묶음과 큰 주머니와 철마 두 필이 들어 들어있었다. 큰 주머니에는 중국의 돈(주화)이 가득 들어있고 쇠로 만든 말은 크기가 어른 주먹의 두 배쯤 되는 철마였다. 마을 사람들은 의논 끝에 꿈에 장군이 일러준 대로 산꼭대기의 땅을 깊이 파고 큰 항아리 속에 이 물건들을 넣어 묻었다. 그리고 항아리 주변에는 동백나무를 심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당산봉이라 부르며 해마다 설날이면 이 봉우리에 모여 풍악을 울리며 제사를 지냈다.

이 섬의 주민들은 안마도의 동쪽에 있는 동촌마을을 장군의 큰아들, 신기마을을 둘째 아들, 월촌마을을 막내딸로 삼아 차례로 잔을 올리고 장군의 자식인 이 세 마을의 액운을 막고 재앙을 물리쳐달라고 지성으로 빌었다고 한다.

이 제사는 일반 당산제와는 달리 특이한 방법으로 지낸다. 즉 당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징으로 길이 50, 지름 6의 대통 두 개에 동백나무 가지를 꽂은 다음 흰 광목천으로 대통 전체를 감고 천 끝에는 긴 머리털과 큰 주머니를 단다. 이 대통을 모시는 사람은 대통 하나에 두 명씩 모두 네 명이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주관한다. 제물로는 깨끗한 집의 수소를 잡아 올리며 끼니마다 새 밥을 지어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제를 지낸다.

제물을 바친 후에는 동촌마을에서 농악을 치며 당산 봉우리에서 당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징인 대통(신주)을 모시고 내려와 동촌마을에서 초하루 밤을 새운다. 초이튿날은 둘째 아들인 신기마을에서 신주를 모시고 와서 농악을 울리며 밤을 새우고, 초사흗날은 막내딸인 월촌마을로 모시고 가서 하룻밤을 지낸 후, 초나흗날은 세 마을 농악대가 합세하여 큰집인 동촌마을로 다시 모시고 와서 함께 축제를 벌이며 밤을 새운다. 초닷새 날은 당산봉에 올라가 당 항아리에 신주를 모신 후 대통 두 개만 가지고 내려와 동촌마을에서 정중히 모신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당산봉을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 당산봉 쪽을 향해 소변을 보면 성기가 붓고 침을 뱉으면 입술이 부어서 말을 못 했다고 한다.

어느 해 송이도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섬에서도 영험하신 신을 모시기 위해 배를 타고 몰래 건너와 당산봉의 철마를 훔쳐 싣고가다가 배가 안마도 앞바다에서 빙글빙글 돌며 움직이지 않자 이는 당 할아버지 할머니의 노여움을 사서 그런다고 뉘우치고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고 나니 배가 움직였다고 한다.

이 당산제는 1968년까지 이어왔으나 당산봉에 해군기지가 설치되면서 제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당산봉에서 당산제를 지내지는 않지만, 지금도 안마도에서는 정월과 유월 연 2회 동촌, 신촌, 월촌 세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산신제와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이 당산제는 섬에서 사나운 파도와 싸우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영험한 신께 마을과 주민들의 안녕과 복을 빌며 고달픈 삶에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하는 행사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농악을 울리며 제사를 지냄으로써 형제처럼 의좋게 살며 단합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한 신을 믿는 정신적 교감으로 여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