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햇살 맑은 날의 해질 무렵 5회

2023-03-06     영광신문

-겨울강가에서 2-

강구현 시인

그는 출소를 한 후에도 동생을 데려가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영광에 내려와 머물다 가곤 할 뿐이었다.

그런 그를 내가 쫒아가 모종의 조치를 취하려 하면 동생이 극구 만류를 하며

오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맞이한 2005, 동생의 행복한 출산과 더불어 그에 대한 미움의 감정도 봄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고 또 아이가 태어남으로 해서 한 편으론 안심도 되었다.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형제 가족 모두에게도 무한한 기쁨과 행복의 선물이 되었던 그 해 겨울 동생의 첫 출산,

겨운 행복은 왜 그리도 짧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인가?

동생을 보낸 슬픔 속에서도 동생의 유일한 핏줄인 새 생명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는 그에게 아직도 병원의 신생아실에서 어두운 밤을 원초적 두려움과 공포에 떨면서 홀로 보내고 있을 그 어린 생명, 엄마의 생명이 끊어진 그 순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단말마적 울음을 터뜨리며 나에게 생모와의 이별을 알려주던

그 핏덩이의 장래를 그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다는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 나로 하여금 동생을 보낸 슬픔으로부터 탈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장례를 치르고 상경 한 그를 불러 아기의 미래를 의논하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아내가 나의 전화기를 뺏으며 말했다.

여보 그 사람에게 전화 할 필요 없어요

아니 왜 당장 그 자식 내려오라 해서 아기의 장래가 보장 될 수 있도록 해야지

여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흥분하지 말고 끝까지 들으셔야 해요?”

아내는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매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사람 아직까지 본 처와 이혼이 안 된 상태이고 그냥 별거만 하고 있는 중이어요. 그리고 자식들도 자기가 키우고 있대요. 고모가 출산을 하자마자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서류 준비를 하던 중 알게 되었어요. 당신한테 말하면 난리가 날까봐 차후에 대책을 세워놓고 말 하려고 일부러 숨겼어요

동생이 낳은 그 아이는 동생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사생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힐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떻게 나에게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아내의 그 말은 동생이 생명을 다 하는 순간과 함께 울음을 터뜨리던 그 핏덩이의 숨넘어갈 듯 한 울음처럼 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미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술과 울음으로 보낸 일주일동안 모든 것은 결정 나 있었다.

동생의 빈소 앞에서 앉아 있던 그가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하는 내용을 내 바로 밑에 남동생이들었는데 그는 국제입양기관인 홀트(HOULT)에 근무하는 자신의 친구에게 동생이 낳은 아기의 해외 입양절차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동생은 장례가 끝난 후 그를 조용히 불러 아이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말라며 쫒아버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이상하게도 더 이상의 분노도 눈물도 치밀지 않았다.

절망, 헤어날 수 없는 절망감에 깊은 신음만이 가슴을 억눌렀다.

그동안 동생의 죽음 앞에 흘린 나의 눈물은, 슬픔은 무엇이었는가?”

그 것은 어쩌면 이 넘치는 세상의 변방에서 숨죽이며 살아 온 동생의 삶을 바라본 큰 오빠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으며 회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나의 울부짖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꽃네야!

신이 있다면 기도를 올려주마.

여자 나이 마흔 둘에 미혼모가 되어서

그래도 행복한 눈빛으로

너의 핏줄을 바라보며

가을 하늘 햇살처럼 화사하게 웃던

어쩌다 못 배운 학력에 밀려서 서럽던 날도

면사포 하얀 날개 꿈 속에서나 그리면서도

그래도 뱃속에 생명을 키우던 엄마의 꿈.

 

꽃네야!

엄마가 된지 스물여섯 시간,

그 벅찬 행복에 겨워서 눈을 감았느냐?

 

꽃네야!

아버지의 운명 앞에서도 기어이

입술만 깨물었던 오래비가

오늘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구나.

가버린 너의 주검 앞에 이 눈물이

무순 가당치도 않은 감정의 사치란 말이냐?

그래도 이 오래비는 견딜 수가 없구나.

 

꽃네야!

이제 오래비의 유일한 기도를 올려주마.

무심(無深)한 저 겨울강의 투명함처럼

부디 저 세상에서나마 설움 없이 행복해다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