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출신 웅산(雄山) 유병용 사진전 초대
영광 법성포 출신 웅산(雄山) 유병용 작가가 오는 5월10일 개막식 겸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13일 오후 3시 작가와 대화 등 16일까지 서울특별시 소재 법련사 불일미술관(종로구 삼청로10)에서 절을 소재로 한 ‘절로 절로 저절로’ 초대 사진전을 개최한다. 본지는 사진전을 미리 만나봤다. <편집자 주>
절로절로 저절로
산사를 감도는 바람 한 줄기, 계절의 수런거림
작가는 현재 마포 한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300여 년 고찰 석불사 종무실장이며 석불사 주지 경륜 스님의 유발 상좌로 ‘웅산’(雄山)이라는 수계명도 받았다. 작가는 남도의 작은 포구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불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의 (영광 법성포) 지명에서 태어났으니 태생적으로 불교와 인연이 깊다. ‘저절로’인데 ‘저절로’가 아니고 운명적으로 절을 만났다.
1971년 외환은행에 입행해 첫 월급으로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을 시작한 이후 20여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수많은 그룹전에 참가했다. 1988년 1월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40년간 근무한 은행 은퇴 후에도 사진가로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취미로 시작했던 사진을 학문적인 체계를 잡기 위해 은행 재직 시 재능대학교 사진과와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을 졸업했고, 호남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는 등 50여 년 동안 은행원, 사진가, 사진 교육자로 열정적으로 활동해왔다.
작가는 “나의 사진은 보기에 편하다. 특별한 기교를 부린 것도 없고 해석이 난해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사진이 가볍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진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서 이번 사진전 제목도 편하게 짓고 싶었다고 한다.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의 ‘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녹수(錄水)도 절로 절로 / 산(山) 절로 물 절로 산수(山水) 간(間)에 나도 절로 /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절로’라는 시구(詩句)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좋은 사진은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누구라도 볼 수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한 작가는 “이 절 저 절 다니며 마주했던 여러 얘기를 누구라도 쉽고 편하게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작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과 사람의 온기로 보듬어지는 절집을 한순간의 예술, 즉 위안의 문신인 감성 언어로 채색하는 작업을 했다.
그가 박제된 무한의 시간을 인화지에 풀어 놓으면 사진 속 마른 이파리에는 피가 돈다. 무심한 구름 몇 조각에도 창포 빛 꿈이 담긴다. 회색빛 가슴에 푸른 빛이 돈다. 깊고 적막한 산사가 미소 짓는다. 산사를 감도는 바람 한 줄기, 빛의 편린들, 계절의 수런거림이 작품 속에서 말을 건다.
웅산(雄山) 유병용(庾炳
디지털사진연구소 사진티나 교수
대한불교조계종 석불사 종무실장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한국사진학회 회원
한국시각예술문화연구소 고문
인천시사진대전 초대작가
전국제물포사진대전 초대작가
외환은행 재직 (1971년~2010년)
재능대학교 출강 (2007년~2014년)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겸임교수 (2009년~2016년)
재능대학교 사진과 졸업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 졸업 (비주얼저널리즘 전공)
영광군 법성초(44회), 법성중(20회)
개인전>>
장미 (1988년, 1993년, 1994년) 들꽃 (1990년) 꽃 (1991년)
벽의 표정.1 (1992년) 벽의 표정.2 (1993년) 體.BODY (1995년, 서울 / 1996년, 토론토)
고국의 들꽃 (1996년, 토론토)
Oh, Canada (1998년, 토론토 / 2001년, 서울)
포기해 봐 뭔가 있을거야(2006년)
Instax_62x99mm (2008년)
꿈속에서 꿈꾸다 (2010년) 사진, 말 없는 시 (2017년, 2018년) 절로 절로 저절로 (2023년, 불일미술관)
주요 단체전>>
1996년 제5회 Toronto Indoor Art Show (CBC, Toronto) 1996년 제35회 Toronto Outdoor Art Exhibition (Toronto City Hall) 1998년 Toronto’s Festival of Photography - CONTACT’98
2018년 신통방통 사진전 (갤러리와) 2018년 제18회 Pingyao International Photography Festival
2018년 제7차 중국연변 국제사진문화주간
2021년 프랑스 파리 기획전 / 선의 경계 : 사진으로 읽기 / Galerie 89, Paris
제4회~제7회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사진집>>
ROSE (1988년)
들꽃, 그 투명한 향기 (1990년) 포기해 봐 뭔가 있을 거야 (2006년, 사진예술사) Instax_62x99mm (2008년, 사진예술사) 사진, 말 없는 시 (2017년, 사진예술사) 절로 절로 저절로 (2023년, 하얀나무)
수필집>>
바보 초상 - 은행원 일지 (1991년, 한마음사)
이론서>>
즐거운 디지털사진공부 (2020년, 하얀나무)
논문>>
1960년대 한국사진의 ‘리얼리즘’에 관한 연구
공저(共著)>>
문화, 관광분야 사진제작의 실제 (2007년, 재능대학교)
꿈속에서 꿈꾸다 (시:김삼환) (2010년, 바움커뮤니케이션)
따뜻한 손 (시:김삼환) (2013년, 도서출판 시와문화)
우아한 반칙 (시:김삼환) (2020년, 하얀나무)
<작가노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나는 태생적으로 불교와 인연이 깊다. 내 고향 법성포는 백제 제15대 침류왕 원년(384년)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 존자가 중국 동진에서 해로를 통해 당도하여 불교를 전파하였던 곳이다.
지금 그 자리에 백제불교최초도래지가 조성되어 있고 마라난타사가 자리하고 있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로서 ‘아미타불’의 의미를 함축한 명칭이다. 그 후 ‘성인이 불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을 명확히 하여 법성포(法聖浦)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불교와 인연이 깊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니 내가 불교와 연을 맺은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법성포 지근 거리에는 천년 고찰 불갑사와 선운사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선운사로 1박2일 다녀왔던 가을 소풍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공양간에서 마련해 주었던 누룽지의 별미, 친구들과 선운사 주변의 감나무에서 감을 따 가방 가득히 담아왔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지금도 선운사 대웅전 앞 늙은 감나무를 보면 그때가 그립다. “셋째야 교회 나가거라” 하셨던 어머님 유훈(遺訓)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나는 절에 다닌다. ‘웅산’(雄山)이라는 수계명을 갖고 마포 석불사 주지 경륜 스님의 유발 상좌다. 몇 해 전부터는 석불사 템플스테이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절과 맺은 인연으로 내 은퇴 후의 삶이 새롭고 보람차다. 아직 불심이 그렇게 깊은 것도 아니고 불교에 대한 이해가 많지도 않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참 많은 절을 다니며 저절로 사진을 찍었다. 감히 만나 뵐 수 없는 큰스님께서 내려 주시는 차를 마시며 귀한 말씀을 듣기도 했고, 속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스님들의 일상을 편하게 접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2017년 여름 석불사 은적당(隱寂堂) 법운(法雲) 큰스님의 입적(入寂)부터 49재까지 모든 과정을 촬영하여 두꺼운 한 권의 책으로 남겨놓은 것은 두고두고 값진 기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삶의 주변에서 보고 느끼는 상황들로 일상의 변주를 즐기는 나는 사진이 굳이 어려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 사진은 늘 쉽고 편하다. 특별한 기교를 부린 것도 없고 해석이 난해 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사진이 가볍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진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도 ‘좋은 사진은 관객이 멈춰 서서, 바라보고, 생각하게 한다.’는 존 화이팅(John Whiting)의 말에 어울리는 사진 몇 장쯤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은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누구라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절 저 절 다니며 마주했던 여러 얘기를 누구라도 쉽고 편하게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의 ‘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녹수(錄水)도 절로 절로 / 산(山) 절로 물 절로 산수(山水) 간(間)에 나도 절로 / 그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절로’라는 시구(詩句)를 떠올려 본다. 나도 어느새 몸 나이 칠순을 훌쩍 넘어섰다. 아무 탈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내 몸이 나에게 불편하고 남을 불편하게 할 때가 떠나야 할 때라고 하시던 큰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안고 산다. 범부(凡夫)로서 절로 절로 저절로 깨우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불교와 맺은 연을 소중하게 안고 살아갈 것이다. 늘 따뜻하게 챙겨 주시는 은사 경륜스님과 재훈사숙님을 비롯한 많은 스님께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하고 예쁜 녀석들 ‘유종인, 정온, 지소원, 소윤’에게 할배의
큰 사랑을 전한다. 먼 훗날 요 녀석들에게 할배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참 궁금하다.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