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김철진 꿈in방사회복지교육문화연구소 이사장
광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일명 ‘우다방’으로 불리며 만남의 장소로 명성이 높았던 광주우체국을 알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광주우편국이 세워졌을때, 서서평(본래 독일 출생 미국인으로 본명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sabeth J. Shepping)이다)은 32세의 나이로 1912년 2월 20일부터 한국으로 파송되어 1934년 54세로 소천하기까지 22년 동안 일제점령기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던 광주의 궁핍한 지역을 중심으로 제주와 추자도 등에서 간호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조선 개화기(조선 말엽)에 한국에 와서 서울과 가장 열악지역인 군산, 광주 등지에서 간호학교 설립, 육아사업, 윤락여성, 빈민구제 등으로 일생을 조선을 위해 바친 인물이다. 서서평 선교사가 처음 맡은 일은 전라도에서 간호사 양성과 기독교 선교활동이었다. 그 후, 서울의 세브란스에서도 근무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3.1운동이 발발하자, 조선인들을 치료해 주고 독립운동가들의 옥바라지를 해주었다는 이유로 일제는 서울 활동을 금지시켰다.
독일 출신 미국인인 서서평 선교사는 1912년 32살의 나이에 처음 조선에 온 처녀 간호 선교사였다. 당시 조선은 나라를 잃은 슬픔 속에 제 백성 돌볼 엄두도 못 내던 나라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병고에 시달리는 몸으로 광주 제중원 등을 중심으로 전라도 일대와 제주도를 끊임없이 순회하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가난한 여인들을 가르쳤다.
광주에 와서 맨 먼저 한국말과 한국 풍습을 익히면서 이름도 한국식으로 지었다. 그는 원래 성격이 조급했기 때문에 매사에 서서(徐徐)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성을 서(徐)씨로 하고 이를 또 강조하는 뜻에서 이름의 첫 자를 천천히 할 서(舒)자로 두 번째 자는 모난 성격을 평평하게 한다는 뜻에서 평평할 평(平)자를 붙여 서서평이라 했는데 이는 그의 본 이름인 쉐핑의 발음을 살린 것이기도 했다. 서서평은 지난호에 논의되었던 한국인 최흥종과 동갑내기여서 최흥종이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알려져있다.
서서평은 간호사로 사역했으나 성경 교사로서 한국 언어를 무척 잘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를 탁월하게 이해해 전주와 군산, 광주 등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했다. 서서평은 특히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 등 가난하고 병약한 많은 사람을 보살폈다.
작은 예수’, ‘조선의 마더 테레사’라 불리는 파란 눈의 외국인 선교사, 서서평은 일제식민지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 간호선교사로 일평생 굶주리고 헐벗은 조선인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며 조선인보다 더 조선인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1934년 6월 서서평 선교사는 광주에서 만성풍토병과 과로, 영양실조로 숨졌다. 그녀가 남긴 건 담요 반 장,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뿐이었다. 한 장 남았던 담요는 이미 반으로 찢어 다리 밑 거지들과 나눴다. 시신도 유언에 따라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되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조선에서 22년간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고 고무신을 끌고 다니며 ‘조선인의 친구’가 아니라 그저 ‘조선인’으로 살았던 사람. 가난하고 병든 이웃, 나환자들을 죽기까지 섬겼던 그 사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아왔다”
서서평이 바라본 조선 땅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번 순회 진료와 전도 여행을 나서면 한 달 이상 말을 타고 270㎞ 이상 거리를 돌았다. 진흙탕에 말이 쓰러지면 머리에 이고 백릿길을 걸었다.
“이번 여행에서 500명 넘는 조선여성을 만났지만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열 명도 안 됐습니다. 조선 여성들은 ‘돼지 할머니’ ‘개똥 엄마’ ‘큰년’ ‘작은년’ 등으로 불립니다. 남편에게 노예처럼 복종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들을 못 낳는다고 소박맞고, 남편의 외도로 쫓겨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팔려 다닙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깨우쳐주는 것이 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라고 1921년 내쉬빌 선교부에 보낸 편지에 기록하고 있다.
서서평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교인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의 전신)를 세워 여성들을 가르쳤다. 조선간호부협회(현, 간호협회의 전신)를 세우고 일본과 별도로 세계 간호사협회에 등록하려 애썼던 이도 서서평이다. 한글 말살정책이 진행 중인 일제 치하에서 간호부협회의 소식지와 서적들은 모두 한글 전용을 고집했다. 조선사람들에겐 출애굽기를 가르치며 독립의 확신을 심어주려 애썼다.
다음호까지 조선을 조선인보다 더 사랑한 미국인 선교사 서서평을 이야기하면서 이 시대의 섬김의 의미를 묻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