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 정국 예고한 영수 회담
최종걸 한국투자유치신문 주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2시간 10분간 차담회 형식의 영수회담을 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710일 만에 야당 대표와 만남이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거대 야당과 현안 협의가 산적해 켜켜이 쌓이고 있었지만, 끝까지 외면하다 2년여 만에 겨우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누가 봐도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양측의 필요에 의해서다. 윤 대통령의 중간 평가와도 같은 4.10 총선 참패가 부른 영수회담이라 할 수 있다. 4.10 총선 압승으로 더 거세진 야권의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든 영수회담이었다. 300석 국회 의석 중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192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다음 달 30일 등원하는 제22대 국회 역시 야당은 마음만 먹으면 무소불위급 입법을 강행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권과 함께 입법 권력을 장악했지만,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맞서는 외통수에 걸린 형국이다. 입법과 행정이 맞대결하는 극한 대치 정국의 후반전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제 영수회담은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는 수준으로 그친 것 같다.
합의사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회담장을 취재하는 퇴장하는 대통령실 기자들을 멈추게 한 뒤 미리 준비해 간 A4 용지 10장을 꺼내 15분간 회담에 임하는 요구사항을 읽었다.
"지난 2년은 정치가 실종되고 지배와 통치만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라며 5400자 분량의 쓴소리를 쏟아냈다. 대통령의 잇따른 거부권 행사에 유감 표시, 채 상병 사건 외압 특검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수용을 요구했다. "가족 등 주변 인물 의혹도 정리해 달라"면서 김건희 여사 문제도 거론했다. "독재화가 진행되고 있다"라는 스웨덴 연구 결과라는 말까지 동원했다.
이어 비공개로 진행된 2시간 10분간 회담은 만났다는 것 말고는 그 흔한 합의문은 없었다. 회담 직후 대통령실에서는 "정책적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했다"와 이 대표가 회담 후 “답답하고 아쉬웠다"라고 밝힌 점으로 볼 때 합의문 도출은 무리였던 것 같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거대 야당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직접 듣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 듣는 쓴소리였을 것이다. 그 쓴소리는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라 당장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당면한 사안들이다. 이 대표가 요구한 사안은 지난 총선에서 야당 후보들이 일관되게 주장했고, 유권자들은 그 사안들에 대해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총선 결과로 보면 그렇다.
대통령이 총선 전 30여 번의 민생토론회를 통해 지역별 민생 챙기기에 나섰지만, 그 토론회에서 나온 지원책도 야당의 도움 없이는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 입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을 입법 독재라고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그 입법 독주를 거부권과 시행령으로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는 더 아슬아슬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회담을 지켜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해 우려된다"라는 반응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22대 국회는 친명계 초선의원들이 대거 진출한 데다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벌써 분야별 특검법을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쓴소리라도 듣지 않을 수 없는 정국이다. 총선 결과가 그렇다. 더 강경해진 거대 야당과 정국을 헤쳐가려면 협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첫 영수회담은 끝났다. 이제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가 준비한 A4지 10장, 5400여 자를 곱씹어야 할 시간이다.
와신상담의 시간일 수 있다. 취임 이후 그런 쓴소리는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민심을 흘려버릴 수 없는 대목들이다. 쓴소리라는 점에서 영수회담이 윤 대통령의 국면전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