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백구(狐白裘)와 이멜다, 그리고 우리의 영부인(令夫人)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2024-07-01     영광신문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맹상군과 호백구(狐白裘)

호백구는 여우 겨드랑이의 희고 부드러운 털가죽으로 만든 갖옷이다.

요즘의 밍크코트와 같은 털외투라 할 수 있겠는데, 호백구 한 벌을 짓기 위해서는 수백 마리분의 여우 겨드랑이 털가죽이 필요했기에 호백구는 중국 고대 최고의 진상품이었으며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진귀한 보물로 여겼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의 왕족이었던 맹상군과 호백구에 얽힌 이야기이다.

맹상군은 인재를 중시해 3천여명이나 되는 식객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 제나라의 왕족이었다.

경쟁국인 진()나라의 소왕이 그의 명성을 높이 사 재상직을 제수하고자 불러들였으나 신하들의 모함으로 구금이 되어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맹상군은 소왕의 애첩에게 많은 뇌물을 보내 왕의 마음을 움직여보려 했으나 소왕의 애첩은 맹상군이 진나라에 올 때 진상품으로 가지고 왔던 한 벌뿐인 호백구를 자신에게도 달라고 요구하였다.

이미 소왕에게 호백구를 진상해버린 맹상군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 거느리고 왔던 식객 중 도둑질 잘하는 자가 궁궐에 몰래 들어가 호백구를 훔쳐왔으며 이 호백구를 받은 애첩은 소왕에게 간청해 맹상군을 풀어주도록 했다.

풀려난 맹상군이 밤시간을 이용해 국경의 성문인 함곡관까지 도망을 했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더군다나 첩에게 빠져 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소왕이 그를 잡으려 군사를 풀어 뒤쫒아 오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시간 닭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의 재치로 함곡관의 성문이 열렸으며 맹상군은 소왕의 군사들을 따 돌리고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부패한 영부인

한국인들 사이에 돼지와 이멜다의 합성어인 돼멜다로 불렸을 만큼 사치가 극에 달했던 이멜다는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이었다.

19862월 항쟁(피플 파워)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마르코스 대통령은 이멜다 여사와 함께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는데 급하게 떠나느라 당시 말라카낭궁(대통령궁)에는 미처 챙겨가지 못한 값비싼 제품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이멜다의 의복과 장신구들로, 3,000여켤레의 구두와 35벌의 밍크코트, 1,200여벌의 드레스, 1,500여개의 명품 핸드백, 500여 장의 브래지어 등이었다.

마르코스 집권기간 동안 단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었다고 알려진 이멜다의 구두는 부패한 정권의 본보기로 삼고자 현재 필리핀 마닐라 박물관에 보관 전시되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또 있다. 6조원대의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전 총리와 부인 로스마이다.

나집 총리는 경제개발 사업을 구실로 1MDB이라는 국영기업을 설립했는데 이 회사를 통해 총 45억달러(61763억원)를 유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한 다이아몬드 수집을 취미로 삼는 등 사치 행각을 벌여 '말레이시아판 이멜다', '사치의 여왕' 등으로 불렸던 로스마는 국영기업 1MDB의 관계자들로부터 4,750억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당했다.

영부인 시절 로스마는 회사 자금을 해외법인으로 빼돌려 보석, 시계, 핸드백 등 명품 구매에 사용했는데, 그 규모가 무려 34600만달러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나집 전 총리 부부의 집을 수색해 27500만달러(3774억원) 상당의 보석류와 명품 브랜드 핸드백, 시계 등 사치품을 압수했다고 밝혔으며 부인 로스마는 결국 재판에 넘겨져 징역 10년과 벌금 2,809억원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우리의 영부인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진기한 보물인 호백구를 뇌물로 받은 소왕의 애첩이나 구두를 하루에 한 켤레씩 갈아신었다는 이멜다, 수억달러 상당의 명품브렌드를 몸에 두르고 다녔다는 로스마 여사 등은 사치에 눈이 어두워 권력자인 남편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도 부족해 나랏일까지 그르친 희대의 여인들이었다.

요즘 우리 나라에도 국가예산으로 다량의 명품 옷을 구입하고 심지어 개인 여행에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 영부인과 명품백를 받다고 전해지는 현 영부인이 구설에 휘말리고 있다.

중국의 4대미인으로 부르는 한나라의 왕소군은 흉노족 선우의 왕비로 보내진 후 미개한 흉노 여인들에게 길쌈과 채소를 재배 방법을 가르치며 소박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볼품없는 외형에 명품을 걸치고 고급 브렌드로 장식을 한다고 해서 돌이 옥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권력자 남편을 둔 부인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느 길을 가야하는 지는 역사가 잘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