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가 있어 마을이 좋다⑥

2024-08-19     영광신문

마을공동체 활성화는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다. 마을주민 간의 교류와 소통을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주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마을공동체 안에서 신뢰, 소통, 참여, 공감을 함께 실천함으로써 보다 살기 좋은 마을로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용문제, 지방소멸, 소득 양극화, 인구소멸, 고립과 우울 등 다양한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문제까지 해결해나가는 토대가 된다. 본지는 영광군 마을공동체사업 추진과정과 주민들의 변화된 삶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당산나무 아래서

 

율곡마을 당산나무, 들독

마을지원활동가로 마을을 방문하게 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을의 당산나무이다. 마을공동체 활동 중 마을자원조사를 할 때면 어김없이 마을의 당산나무와 당산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어디 그뿐이랴. 마을 관련 사진들을 보면 높은 비중으로 마을의 당산나무가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당산나무에는 마을과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마을의 이정표가 되어 주기도 한다.

발막마을 들돌

마을주민들과 얘기를 나눌 때 당산나무가 주제로 나오면 마을어르신들은 신이 나서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옆 마을 당산나무는 수령이 150년도 안되는데 보호수로 지정되고 우리마을에 있는 당산나무는 수령이 더 오래됐는데도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마을의 당산나무는 어린 시절 동네친구들과 함께 놀던 추억의 장소이고 농부에게는 더운 여름 땀을 식히던 쉼터였다. 그리고 두런두런 당산나무 아래 평상이나 정자에 모여 마을의 공동사를 논의하던 소통의 장소이기도 하다.

순용마을 당산나무

무엇보다 농사의 풍흉이 중요한 농촌마을에서는 매년 당산나무나 당산돌에 당산제를 지내 마을의 안녕과 그해 농사의 성공을 빌었다. 주로 호남·영남 지역에서 마을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로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이나 정초, 10월 보름에 지낸다. 제사를 마친 후 풍물을 치는 매굿과 마을 구석구석과 각 집을 찾아가 이른바 매구치기, 마당밟기, 지신밟기를 한다. 그리고 줄다리기를 해서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제사비용은 마을공동 제답의 수입에서 충당하거나 집집마다 추렴하여 쓴다.

이처럼 당산나무와 당산돌은 당산제의 매개물로 마을사람들 간에 얽혀 있는 감정을 해소하는 화해의 장을 마련하고, 마을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일체감을 가짐으로써 지역공동체의 유대를 강화시키고, 노동으로 힘든 생활에 활력을 주는 청량제의 구실을 한다.

하지만 근래에는 마을주민의 연령이 고령화되고 주민수가 줄어들어 당산제를 준비할 여력이 되지 않고 종교적으로 미신이라는 오명으로 당산제가 치러지지 않는 마을이 늘고 있다.

언목마을 당산나무

 

당산나무 이야기

영광의 마을들은 팽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당산나무가 있다. 수령도 많은 것은 500년을 훌쩍 넘기도 하고 적어도 150년을 넘기고 있다. 종류만큼 마을의 당산나무는 각각의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활동과도 연관되어 공동체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활동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몇 가지 소개를 해보면 먼저 마을의 당산나무가 마을공동체의 이름이나 주제가 되는 경우인데 백수읍 지산마을의 당산나무는 영화 서편제의 촬영장소로 수령이 450년 된 암수 한 쌍의 할배나무와 할마시나무로 구전되고 있는 팽나무로써 영화에서는 서쪽 당산나무가 소리 연습을 자주 하던 곳으로 선택되어 촬영되었다. 마을의 당산나무를 부각시켜 ‘300년 당산나무의 정기를 이어받은 마을이라는 사업명에, 마을공동체명을 서편제 지산마을이라 지어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율곡마을 당산나무

다음은 영광의 몇몇 마을에는 당산나무 아래에 들돌(들독)이 있다는 것이다. 이 들돌은 들어 올려야만 마을의 성인으로 인정해 줬다고 한다. 농기계가 부족했던 시절에 마을주민이 함께 농사를 짓기에 제 몫을 하는 노동력이 필수였고 들돌을 들어올리는 통과의례가 필요했던 것이다. 군남면의 율곡마을, 법성면의 발막마을 등이 그 예이다.

보통 마을의 당산나무는 1990년대 관청에서 보호수 지정을 받아 그나마 관리주체를 마을대표로 한다. 하지만 보호수 지정을 못 받아 관리가 소홀할 수 밖에 없는 경우는 병충해 등으로 고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낙뢰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 소실되는 경우가 있다. 홍농읍 산덕마을은 마을의 당산나무가 화재로 소실되어 마을주민들이 아쉬워 하는 곳이다, 대마면 월산마을은 올초 고사한 당산나무를 대신할 새로운 당산나무를 심는 식재행사를 하였다. 식재행사를 통해 마을의 화합과 향우의 호응을 이끈 사례라 하겠다.

마을의 당산나무는 사건사고의 현장이기도 하다. 법성면 언목마을의 당산나무는 70년대 초반 공군의 전투기가 추락한 곳으로 당시 현장을 직접 눈앞에서 목격한 박대복 이장님의 말에 의하면 저녁 무렵 당산나무 아래서 놀고 있는데 비행기 하나가 굉음을 내며 머리위를 지나 당산나무를 스치고 지나가 저 산중간에 박히더라고추락하면서 비행기날개가 당산나무의 일부가 부러졌다는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당산나무는 한아름에 안기지 않는 둘레와 같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여름 넉넉한 그늘과 바람을 내어주듯 마을주민 하나하나를 엮어준다. 마을공동체 복원과 활성화를 위해 마을지원활동가로 활동하며 아낌없이 내어주는 당산나무의 모습을 닮기를 기원해 본다.

/영광군 마을지원활동가 서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