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오류와 착각
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경험에서 얻는 지식을 우리는 산지식이라고 한다. 이해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경험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이 살아 있는 지혜의 상징으로 우대받던 시절도 있었다. 부락의 촌장은 연장자가 맡았고 마을의 대소사는 모두 촌장과 의논을 거쳐서 실행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자신의 대부분 지식을 경험에서 찾곤 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유행어도 만들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신뢰한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겪었던 기억이 오염되었거나 왜곡되어 저장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 사람의 뇌는 기억의 20% 정도가 가족 혹은 친구의 기억에 오염되거나 왜곡되어 있다고 한다. 자기가 어렸을 적 분명히 겪었다고 기억되던 일이 같이 있었던 친구의 일이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기억을 믿는 건 당연하지만 막상 우리의 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경험의 기억이 이렇게 소소한 곳에서 틀리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중요한 사안에서 왜곡을 사실적 기억 즉, 경험으로 믿으면 곤란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경험의 큰 함정은 오히려 경험에서 온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현재 윤 대통령 정권을 보자. 평생 검사였던 그가 갑자기 대통령이라는 거대 조직의 수장을 맡으면서 발생하는 모든 허점은 바로 검사라는 직업에서 얻은 경험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각종 범죄의 수사를 맡거나 지휘하며 알았던 전문 분야가 경험적 지식의 바탕을 이루고 자신 역시 스스로 전문가의 반열로 올라간다. 수사를 통한 지식이 범죄적 한계에 국한되어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 그가 얻은 경험적 지식은 분야별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반인의 착각은 그나마 사회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선출직 수장의 경우는 다르다. 경험의 오류는 많다. 얼마 전 지인이 사진과 포토샵을 거론하며 과거에 이미 숙달했고 따로 공부할 게 없다는 지식 자랑을 했다. 무려 10년 전 공부의 경험이다. 당시 포토샵 실력으로는 현재 포토샵을 다룰 수 없으며 사진기도 많이 달라져 있다. 여기서 경험은 이미 지식의 왜곡이다. 잘못된 지식은 오히려 경험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든 이유다. 경험의 전면 부정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해봐서 아는 지식은 이에 따르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인문서 한 권 달랑 읽고 인문을 논할 수 없고, 주역을 일독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히려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한 번의 경험과 같은 맥락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경험이 지혜와 지식으로 승화하기 위해선 반복이 필요하다. 요즘 정권을 보면 경험의 중요성을 잘 알 것이다. 소위 ‘해 먹는’ 반복적 범죄로 수십 년을 안전하게 권력과 돈을 챙기고 있지 않은가. 좋지 않은 경험적 지식의 활용이다. 요즘 온 나라가 혼돈으로 빠져든 이유 역시 범죄적 경험의 활용으로 소질을 계발하고 발휘하고 있는 치류배들 때문이다. 이들은 ‘검사 불패’라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검찰 공화국을 구축했다. 왕조시대의 권력보다 훨씬 강하다. 조선의 왕은 대신들이 엎드려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면 할 수 없었다. 어기면 쫓겨나거나 독살을 당했다. 하지만 검찰 정권은 대신을 가볍게 여기고 심지어 한 식구인 여당 대표를 놀리고 능멸한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식구는 기소하지 않고 대드는 정적은 철저하게 밟아 감옥으로 보낸다. 심지어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기술도 부린다. 하지만 이들이 모르는 게 있다. 바로 경험이다. 무소불위의 검사 불패는 경험했지만 몰락의 경험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사 유래에 없던 참담한 부인 정치가 선배들이 목숨으로 건설한 국가를 도륙을 내고 있지만, 기소조차 하지 못하는 검사를 보며 민심은 어디로 치닫고 있을까. 이제부터 미경험의 몰락을 새롭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권불십년의 절반 권불 오 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