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률 교수의 철학이야기(344)

철학자와 자녀(9)-자녀 잃은 슬픔(박완서, 공자 외)

2024-11-11     영광신문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이하곤은 정7품직에 제수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고향인 충북 진천에 내려가 학문과 서화에 힘썼는데, 특히 책을 매우 사랑하여 어떤 책이 하나 나오면 옷을 벗어 주고라도 그걸 사들여 수집한 장서(藏書)1만 권을 헤아렸다고 한다. 성격이 곧아 아첨하기 싫어하고, 여행을 좋아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여행하였으며, 불교에도 관심을 두어 각 사찰과 암자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하곤은 여섯 살 난 딸을 마마로 잃고 이렇게 울부짖었다. “물가에 가도 네가 떠오르고, 솔바람 소리를 들어도 네가 떠오르고, 달밤에 작은 배를 보아도 네가 떠오르니이 아픔 어디에 끝이 있을까?”

여류소설가 박완서(대표 작품:도시의 흉년,휘청거리는 오후)는 남편을 잃은 지 석 달 만에 외아들을 떠나보냈다. 명문대 졸업반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던 아이였다그녀는 청동기처럼 단단하고, 앞날이 촉망되던 젊은 의사 아들을 잃고, 신에게 한 말씀만 해보라며 따지고 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하느님,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한 내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말씀만 하소서.”

 특히 대를 이을 외둥이의 죽음은 상명(喪明)’이라 일컬었다. 눈앞 광명이 캄캄하게 꺼져버린, 빛을 잃고 희망을 앗긴 그런 상태를 말한다. 공자의 제자로 공문 10(孔門十哲, 공자의 뛰어난 10명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자하(子夏)는 아들이 죽자, 밤낮을 울다 상심해 실제로 눈이 멀었다고 한다.

공자 역시 살아생전 아들을 잃는 아픔을 당했다.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 =공리)는 나이 50이 되어서야 아들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를 낳았는데, 하필이면 자사가 태어나던 해에 백어가 죽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아버지인 공자보다 먼저 죽었는데, 이때 공자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다음의 일화에서, 부자(父子)간의 관계를 조금은 유추해볼 수 있겠다. 하루는 공자의 문하생인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선 그대에게만은 우리들한테 하신 말씀과는 다른, 무슨 특별한 것을 들려주시지요?”

이에 백어가 대답하기를 여태까지 특별한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 내가 황급히 뜰을 가로지르려 하자, 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우고는 물었습니다. ‘시경(민요를 중심으로 하여 모은, 일종의 시집)을 읽었느냐?’ 그래서 내가 아직 안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시경을 배우지 않은 인간은 말상대가 안 된다고 나무라셨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시경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또 어느 날 내가 황급히 뜰을 건너가려 하자,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 세우고는 ()를 배웠느냐?’ 하시기에, ‘아직 안 배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예를 배우지 않은 인간은 사회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꾸짖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도 예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진항은 이 대화를 통해시경과 예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특히 스승과 아들의 관계가 그리 친근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특별히 아끼지도 챙기지도 않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아들, 그를 잃었을 때 과연 공자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것은 공자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영광 백수 출신,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강성률 철학티비’, ‘강성률 문학티비운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