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만나는 곽일순 작가 지상전 - 자연
영광출신 곽일순 사진·수필 작가가 영광신문 문화사업 후원으로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듬뿍 담은 포토에세이 ‘흔적’을 출간했다. 본지는 오는 12월6일 영광문화원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 앞서 독자들에게 작품 일부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불갑사 입구 우측에 있던 종각이다.
금강문과 사천왕이 자리를 잡으며 아름드리 측백나무는 베어졌고
예전 모습은 기억으로만 남았다.
여유롭던 공간과 함께 한적함을 즐기던 불심도
건물이 새로이 들어선 만큼 여유를 잃어간다.
늙으면 옛것을 그리워하나 보다.
오늘도 하루가 붉은 태양을 따라 소멸(燒滅)하고 있다.
늦은 물때에 맞춰 긁어대는 갈퀴호미 끝이 떨어지는 해만큼 바쁘지만
만찬에 오를 조개는 그런대로 잡았다.
항시 자연은 여유롭고 사람은 바쁘다.
만족을 알면 즐겁고 (知足可樂)
탐욕에 힘쓰면 근심이 온다. (務貪則憂) [景行錄
사진은 주변부터 찍는다.
다행히 우리 지역은 촬영 포인트가 아주 많다.
특히 서해의 특성으로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홍농의 계마항과 염산 향화도 그리고 백수 해안도로 이십여 리가 온통 촬
영 포인트이다.
여기에 갯벌의 변화와 밀물은 날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염산의 월평항은 칠색초가 피어오르는 초여름이 되면 자홍색의 아름다움
을 뽐내며 타지의 사진가를 불러들인다.
갯골과 칠색초가 이렇게 환상적으로 어우러지고 밀물이 안개가 되어 밀려
드는 풍광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사진 한 장에 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장노출이지만
결과는 시간을 잊게 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밤,
갑자기 마른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비 없는 번개는 촬영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거처에서 5분이면 도착하는 성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번개가 많이 떨어지는 방향을 확인하며 앵글을 조절했다.
아주 쉬운 것이 번개 촬영이지만
촬영보다 여건에 맞는 날씨를 잡는 것이 훨씬 어렵다.
배경은 영광읍의 부분 야경이다.
계마항의 9월 초순 해넘이는 등대와 만선, 귀항하는 어선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갈매기의 어우러짐으로 인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사진이 사실성을 뛰어넘으면 그림 같다고 말하고, 그림을 정교하게 잘 그
리면 사진 같다고 한다.
해안 낙조는 해가 입수하는 곳을 살피며 촬영을 하기때문에 정확한 포인
트를 원하는 사진은 일 년 중에 기회가 불과 3~4일에 불과하다.
해는 날마다 옮겨가며 입수를 하므로 기회를 놓치면 일 년 뒤를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날씨의 협조까지 받아야 하니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
그래서 사진의 다른 표현은 ‘기다림’이다.
해안도로 언덕 밑 모자바위 근처에서 은하수를 촬영했다.
모자바위 전설보다 훨씬 오래된 은하수의 전설은
세계 곳곳의 나라마다 다른 이야기로 전해진다.
지구는 우리 은하계의 외곽에 위치하기 때문에
여름 은하수는 길게 하늘을 가로지른다.
보통 4월부터 9월에 걸쳐 촬영되는 은하수는 모두 우리 은하 내의 별이
고 밖의 별은 일반 카메라 렌즈로는 촬영이 어렵다.
총질량은 태양 질량의 6천억에서 1조 배 정도이고
3천억에서 4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동림지는 국내 최고의 철새 촬영지가 되었다.
12월이면 찾아오는 가창오리를 아름답게 촬영하는 방법은 단체 사진이
다. 일몰 후, 10분에서 30분이 지나면 일제히 수면을 떠나 장소를 옮겨
간다.
이들이 머리 위로 넘어가며 펼치는 군무는 셔터 누르는 것을 잊을 정도
로 감동을 준다.
2월 초순이 되면 해남과 금강 하구의 가창오리들이 모두 동림지에 모여
서 한꺼번에 돌아간다.
이때 40만 마리 이상의 오리가 모여서 펼치는 공연은 환상이다.
때로는 거대한 붕새로 때로는 고래로 변하는 군무의 변화는 그대로 자연
의 신비다.
송이도의 몽돌은 돌멩이도 이렇게 예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바닷가
를 장식하고 있다.
떠오르는 햇살에 반사되는 금빛은 몽돌의 매끄러움을 짐작하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 현저히 줄어드는 몽돌이다.
과거 건축업자들에 의해 장식용으로 상당량이 유출되었다는 소문은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고, 낙월의 묵석 역시 채집가들에 의해 중장비까지 동
원되어 싹쓸이를 당했다.
송이도의 몽돌은 해안로 건설로 인해 바다로 흘러들어오는 몽돌의 원석이
차단되어 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이론이 유력하다.
때로는 내버려 두는 게 답이다.
도는 항상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만 道常无爲
하지 않음이 없다. 而无弗爲
경주의 삼릉은 명당지로 유명하다.
실제 여러 번 이곳을 들르면서 기이한 현상을 만나기도 했다.
한 번은 주위 몇십 리가 온통 안개로 덮였는데, 삼릉만 부분 탈모처럼 안개
가 범접하지 않아서 많이 놀랐다.
거친 수피(樹皮)를 강조하기 위해 섬세한 디테일을 많이 제거하고 중간
계조를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