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만나는 곽일순 작가 지상전 – 사람과 자연
영광출신 곽일순 사진·수필 작가가 영광신문 문화사업 후원으로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듬뿍 담은 포토에세이 ‘흔적’을 출간했다. 본지는 오는 12월6일 영광문화원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 앞서 독자들에게 작품 일부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사람과 자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영광문화원 2층 전시실에서 6일 출판기념회 개최
필름부터 디지털 사진까지 영광 등 지구촌 모습 담아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새털처럼 가볍게 살아온 등 뒤를 돌아보며 흔적을 더듬어본다.
1988년부터 촬영했던 사진을 일단 정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필름은 2003년까지 촬영했고, 디지털은 2000년부터 기록하기 시작했으니 3년은 필름과 디지털이 겹치는 시기이다. 다니던 직장을 던지고 DP 점을 1995년에 열었고,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까지 현상 인화할 수 있는 암실을 마련했다.
사진관을 운영하던 선배에게 흑백 현상과 인화를 배웠지만 학생들 소풍 사진 정도를 인화하던 주먹구구식이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데이터를 정리하고 전문 서적을 통해 공부했다. 이렇게 쌓은 지식이 0과 1이라는 숫자 나열에 불과한 디지털에 무너지면서 현상 통이 아닌 모니터 앞에 앉아야만 했다. 그리고 어렵기만 했던 촬영 기법들이 모니터 현상을 통해 쉽게 만들어져 나왔다. 좋게 말하면 혁명이지만 영상 기록 방법 자체가 송두리째 바뀐 것이다. 흥미로운 건 아직도 필름이라는 시대적 유물을 사용하는 사진가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사용이 어려운 연배는 그렇다 치고 젊은 20대가 필름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현상은 약간 이해가 힘들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필름 선택 이유는 “아날로그스틱한 색감”이다. 하지만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의 현상 결과물은 이미 디지털로 변환된 것이고 변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로스 현상은 디테일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아날로그 색감은 이미 디지털에서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된 지 오래다.
필름과 디지털 파일을 뒤적이며 대충 2천여 장을 골라내고, 다시 200장으로 압축했다. 압축하면서 깨달은 것은 자연보다는 사람에게 감동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름으로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에서 죽음과 삶, 달관과 해탈을 보았다. 결국, 애착하던 자연 풍경은 뒷장으로 넘기고 낡은 필름에 새겨진 사람 이야기를 앞장에 세웠다.
주변을 기록했던 소소한 사진이 나이와 함께 마음속으로 훅 치고 들어온 것이다. 처음 선택에서 제외되었던 사진들이 모두 앞장에 배치가 되었으니 신기한 일이다. 사진은 일부러 뒤섞었고 글 행 나눔도 격식을 두지 않았다.
중국과 수교가 되자 가장 먼저 달려가서 백두산부터 들렀고, 장자제와 황산 등을 섭렵했지만 책에 들여놓을 자리는 장소별로 한 장씩에 불과했다. 그랬다. 아무리 좋은 명소와 명산도 두 장이면 감동이 밋밋해지고 석 장이면 벌써 지루하다. 발달한 미디어로 인해 같은 장소의 좋은 사진들이 차고 넘치니 신선함도 없고 감동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결국 ‘가슴으로 읽는’사진은 대작이 아니라 주위에서 기록되는 소소함이었다.
포토에세이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엄격히 에세이는 아니다. 사진을 촬영했던 당시로 돌아간 감성을 짧게 주석해 놓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사진이란 시간의 멈춤이다. 촬영 당시의 기억들이 조각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다가오기에 감성 또한 너무도 생생하다. 사진으로 시간을 분판 촬영하여 35년을 연결했다.
그동안 사진이란 인연으로 곁을 스쳐 간 사람이 기억의 한계를 넘었다. 조기 포기자는 대부분 연배가 높거나 사진을 쉽게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사진은 너무 쉽게 찍힌다. 그래서 어렵다. 나와 같이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을 공부하고 있지만 스스로 초보라고 말한다. 겸손이 아니다. 사진을 안다고 자신하는 순간 낙오자가 된다. 사진 찍는 법이 아닌 ‘사진’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은 해볼 만한 취미다. 너무 쉬우면 그만큼 빨리 흥미를 잃는다. 항상 옆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는 회원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한다.
艸人木軒(초인목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