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말자
곽일순 수필가·사진가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었다. 박근혜 이후 불과 8년 만이다.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지만 정작 본인은 작은 수오지심조차 없었다. 단지 새벽잠을 설치며 지켜보던 국민만 부끄러웠을 뿐이다. 체포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지만 국민의 심정은 일각이 여삼추였다. 손에 수갑을 차거나 포승줄에 얽혀 나올 모습을 기대했던 것은 계엄을 인정할 수 없는 국민 대다수의 정서였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반대로 흘렀다. 대통령으로서의 최대한 예의를 차려준 것이다. 체포되어 나오는 모습도 공수처에 들어가는 모습도 모두 비공개로 이루어졌고 뒤통수 사진 한 장만 남았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들어가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었다.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내란범에게 극진한 예의를 갖추는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정말 싫다. 그가 체포 직전에 남긴 셀프 담화문은 마지막 화점(火点)을 찍었다. 언론은 이 담화문에 ‘궤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특히 대한민국의 법이 모두 무너졌고 자신이 그 희생자라는 발언은 상식인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누가 법을 무너뜨렸고 누가 희생자인지 따질 가치도 없다. 법원의 판사가 발급한 체포 영장이 불법이라는 생떼는 검찰 총장 출신의 법 전문가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모든 영장은 법원의 판사가 발급한다. 불법 영장이 아닌 요건이 무엇인지 그래서 궁금하다. 우리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에게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지만 많이 찌질하다. 여기서 찌질은 소인배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여당 대표는 대통령을 마피아 범죄자 취급한다고 불평했지만 솔직히 너무 과분한 비교다. 적어도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부하에게 뒤집어씌우거나 방패막이로 내몰고 혼자만 숨지는 않는다. 내란 43일 만의 체포에 그나마 안도하지만 외신은 우리를 매우 부끄럽게 한다. 세계 대부분 레거시 외신은 윤석열의 체포 현황을 실시간 톱뉴스로 다뤘다. 상당 기간을 관저에 숨어 은거하다 체포되었다는 내용의 뉴스다. 하지만 정작 부끄러운 건 대통령의 행보다. 그는 자신만을 위한 희생을 요구했다. 명령을 실행으로 옮겼던 군 장성들이 모두 구속되었고 실행의 축이었던 국방부 장관도 구속되었지만 오직 자신만은 관저를 요새로 만들어 꼭꼭 숨어버렸다. 그리고 나오지 않으려 떼를 썼다. 외신들의 표현에서 많이 사용한 단어가 요새와 은신과 은거다. 혼자 살겠다고 경호처의 젊은 요원들을 모두 범죄자로 만들려 했다. 여기에 조금도 주저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의 행동이 그렇다. 총이 안 되면 칼이라도 사용해서 자신을 지키라고도 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나쁜 사람이다. 자신의 체포로 인해 대한민국의 법이 무너졌다는 뻔뻔한 발언은 그에게 일상이고 여기에 더해진 게 거짓말이다. 아무리 거짓말로 연명하는 정치인이라지만 그래도 하루 정도는 덮을 수 있는 거짓이었으면 그나마 이해가 되지만, 그의 거짓말은 단 십 분을 넘기지 못하고 들통이 난다. 술에 취해 기분대로 내뱉는 주사(酒邪)와 아주 비슷하다. 아무튼 윤석열은 이렇게 짧은 정치 기간을 최악으로 마무리했다. 무슨 정치를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의 재임 기간이 고통스러웠다는 기억만 남았을 뿐이다.
사람의 기본은 부끄러움을 아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를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했다.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올바름에서 벗어난 행위는 미워해야 하는 마음이다. 여기서 안정된 덕이 형성되고 의(義)가 발현된다. 즉,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다. 철학자 박구용은 윤석열을 가리켜 ‘사악하다’고 평가했다. 그냥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다. 나쁨에 거짓을 더하면 사악함이 된다. 거짓은 모든 옳지 않음의 시발점이다. 현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거짓말’이다. 모든 거짓과 악은 용서를 자양분 삼아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