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을의 전설 기행 | 각시섬의 전설
지당 이흥규
각시섬은 영광군 낙월면의 부속 섬이다. 이 섬은 둘인데 조금 큰 섬을 대각시도(大角氏島), 작은 섬을 소각시도(小角氏島)라고 하며 소각시도는 7가구 대각시도는 15가구의 어민들이 살고 있다. 이 두 섬은 무안 해제 반도의 백학산 기슭에서 바라보면 어느 때는 여자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때에는 병풍처럼 보이기도 하여 날씨의 변화에 따라 모습이 변화무쌍하다. 이 두 섬이 <각시섬>이라 일컫는 데는 애틋한 비련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무안 해제 백학산 기슭의 갯마을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은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고 아내는 바닷가에서 부지런히 해초를 따서 살림을 꾸려나가 부족함이 없이 행복하였다. 그런데 알뜰한 이 가정에 불행이 닥쳤다. 남편이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드러눕게 되자 아내 혼자의 힘으로 해초를 뜯어서 병간호하랴 살림 꾸려나가랴 그동안 모아놓은 밑천도 모두 날아 가버렸다. 그러나 아내는 낮에는 백학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고 석양에는 해초를 뜯어 지극정성으로 남편 병구완을 하였다. 인근에서 유명한 의원을 모두 찾아다니며 남편의 병 치료에 정성을 다하였으나 영험하다는 의원들마저도 남편의 병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여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아내가 시름에 잠겨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던 어느 날, 이웃 마을 노파가 찾아와 위로하며 지나가는 말로
“예로부터 저 섬에 선약(仙藥)이 있다고 들었다만…….”
하고 중얼거리지 않는가.
“할머니 참말인가요? 그 약이 어떻게 생겼다고 하던가요?”
하고 애원하며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이 사람아! 저 섬에 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네. 남자들도 그러한데 여자 몸으로 어찌하려고?”
그러나 오직 사랑하는 남편을 구하고자 하는 일념뿐인 아내는
“내 정성을 하늘이 안다면 죽지 않을 것이요, 정성이 부족하여 남편을 위해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으니 가르쳐 주셔요.”
하고 사정을 하며 매달렸다.
“자네 정성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러나 나를 원망하지는 마소.”
하고 만병통치약인 불귀도(不歸島)의 신선초를 설명해 주었다. 남편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부푼 아내는 섬에 다녀올 동안 남편이 먹을 미음을 쑤어 머리맡에 놓으며
“아주 좋은 선약이 있는 곳을 알았으니 다녀올 동안 드시고 기다리세요.”
말하고 불귀도를 향해 떠났다. 섬에 도착한 아내는 섬을 구석구석 찾아 헤매던 끝에 바위 벼랑에 있는 약초를 발견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힘겹게 벼랑을 타고 올라 약초를 잡는 순간 바위벽 구멍마다 독뱀이 스르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아내는 피할 겨를도 없이 그중에서 재빠른 놈에게 하체를 덥석 물려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고 까무러친 아내가 차가운 바닷물에 빠져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아랫도리는 자신이 보기에도 징그러운 구렁이로 변해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내의 손에는 신선초가 꼭 쥐어져 있었다. 몸은 구렁이로 변해 버렸지만, 남편을 살려내야겠다는 일념은 한결같아 아내는 헤엄을 쳐 마을로 돌아왔다.
한편 남편은 아내가 떠난 뒤 약초를 구하러 떠난 섬을 바라보니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으로 보였다. 남편은 아내가 머리맡에 놓아둔 미음도 다 마시지 못하고 애처롭게 아내를 부르다 죽었다. 석양 무렵에야 집에 돌아온 아내는 죽은 남편을 보고 슬피 슬피 울었다. 아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하늘에서는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아내는 약초를 남편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날이 새기 전에 불귀도로 헤엄쳐 돌아갔다. 밤비가 갠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부부의 집에 와 보니 죽은 남편의 머리맡에 신선초가 놓여 있지 않은가. 그래서 불귀도를 바라보니 불귀도 가까이 헤엄쳐 가는 구렁이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저 구렁이는 필시 약초를 구하려다 독뱀에 물려 구렁이로 변신한 각시일 것이라며, 그래도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용왕님이 죽이지는 않고 몸만 변신시킨 것이라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남편을 장사지내며 불귀도를 바라보니 마치 섬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 각시처럼 보였다. 남편의 제삿날이면 이 불귀도는 슬피 우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불귀도를 각시섬이라 부르며 당집을 짓고 매년 큰 당제를 지내며 어부들이 무사하기를 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