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도리가 무엇인데
곽일순 수필가·사진가
오래전부터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 있다. 사람의 본성이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이 성리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가장 많이 논쟁을 해왔던 게 또한 인성이다. 사단과 칠정을 논하고 이기일원과 이원을 이야기했다. 물론 현실론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현대에 와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지만 인성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공헌을 했음도 인정해야 한다. 현실론이 이론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 내란 정부로 인한 위헌 관련 헌법재판소의 소송 진행을 보면서 머릿속을 맴도는 게 바로 성리학이다. 깊은 공부가 없어 율곡의 성학십도까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사단칠정 정도는 우리는 대부분 알고 있다. 여기에 역사 깊은 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학의 버무림은 가르침 방향이 대부분 비슷하기에 우리 민족의 인성 지향점은 비슷하다. 마음과 몸을 닦아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고 내면의 선한 자아를 끌어내는 가르침이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한민족의 공통점은 공감에서 찾는다. 이웃의 아픔을 같이하고 공동체는 하나처럼 움직인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 해주는 마음이 공감이고 다른 표현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다. 하지만 요즘 내란 정국을 대하면서 모든 게 무너졌다. 전혀 다른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사회의 정상에서 모든 혜택을 누리던 일부 부류가 품은 것은 인성이 아니라 수심(獸心)이었다. 위헌적 계엄으로 내란 정국을 만든 수괴는 모든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아래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수치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아래 부하는 그들대로 자신의 형사 재판에서의 불이익을 피하고자 국가의 위기에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불안에 떠는 국민을 철저히 배격하고 자신의 살길만 찾는 이들의 거짓말과 침묵 그리고 부인은 썩어빠진 국무위원과 장군들의 똥별로 대변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처음부터 거짓말로 일관하는 대통령의 태도는 대하기가 역겹다.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은 아직도 내란 수괴를 버리지 못하고 품 안에 감싸는 행위를 넘어 구치소까지 문안을 다니고 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일까. 야당의 김민석 의원은 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개인이 아니라 내란이 아직 평정되지 못함에 큰 분노를 안고 있는 국민의 의문이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부정 선거론에 동의합니까? 그렇다면 당시 선거관리를 책임진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과 선관위 사무총장을 왜 그대로 두었습니까. 12.3 계엄이 헌법상 발동 요건을 갖췄다면 합법 행위였습니까. 정치인 체포 지시가 위헌이 아닙니까. 서부지방법원 폭동이 정당합니까. 법원 판결이 마음에 안들면 폭동이 허용돼도 됩니까. 폭력을 선동한 세력을 용인해야 합니까. 이런 헌정질서 문란과 행위에 명백하게 선을 긋지 못하는 국민의힘이 무슨 정상적 보수 정당입니까. 법치주의를 내세우던 집권 여당이 사법 체계 전반을 부정하는 찌질한 당이 되어버렸습니까. 이대로 극단주의를 방치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극단주의와 절연해야 합니다.”라는 김 의원의 질문은 현재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질문이다. 부정선거가 이번 계엄의 원인이었다는 주장은 그만큼 엉뚱하다. 현재 정권이 관리하던 선거가 부정이었다면 책임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다른 원인을 ‘반국가세력이 초래한 국가의 위기’ 때문이라고 밝혔었지만, 헌재에 나와선 국민에게 이를 호소하기 위함이라고 말을 바꿨다. 자기 위기가 국가의 위기라는 의미다. 여기서 정점은 ‘인간의 도리’를 강조한 얼마 전 그의 발언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처단하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눠 헌정을 무너뜨리려던 독재 행위가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정의이고, 이를 반대하는 국민은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위헌적 계엄보다 더욱 화가 치미는 건 그의 비인간성이다.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여당과 윤석열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