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문해력은 무사합니까?

곽일순 수필가·사진가

2025-03-17     영광신문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최근 이북 리더(e-book reader)기를 한 개 구매했다. 책은 종이가 주는 느낌이 좋아 종이책을 선호하지만 이북 리더기를 굳이 마련한 것은 시대적 조류에 따르고자 함이다. 노안으로 종이책의 작은 활자가 언제부터인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약간의 짬이라도 생기면 어느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핸드폰 증후군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한 마음에서다.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방법이지만 일단 소형 가방을 챙겨야 하고 장소에 상관없이 책을 펼쳐 들만한 겉치레 같은 용기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게 이북 리더기이다. 핸드폰 보다 가볍고 책 수백 권을 간단하게 저장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특히 눈에 미치는 영향이 종이책과 거의 다름없으니 일거양득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과 밥을 먹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각각 정신과 육체에 영양을 공급한다는 것만 다르다. 갑자기 책 이야기를 꺼내든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최근 모 사범대학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독해력이 OECD 국가 평균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세계적 교육 열풍으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까지 부러워했다는 우리 교육에 큰 구멍이 발생한 셈이다.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OECD 중간 이하 수준이라면 대학 입학에서 치르는 평가는 큰 결함을 안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독해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문해력이 맞지 않나 싶다. 우리 생활에서 소통은 크게 언어와 글로 나뉜다. 대화의 요점을 잘 알아듣고 기억하는 능력이 언해력이라면 글을 잘 이해하는 능력은 문해력이다. 여기서 난청과 난시는 다른 문제다. 말과 글을 제대로 판단하고 줄기를 추려내는 능력은 개인차가 상당히 크다. 특히 대화는 공기의 파장과 함께 순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놓치면 복구 해석이 불가능하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화를 여러 사람이 들어도 기억은 제각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장 하나를 열 사람에게 차례로 전달하게 하면 마지막 도착하는 문장의 30% 이상은 왜곡이 되어 있다. 개인의 기억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이 우선 입력이 되고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대화의 전달은 과정의 왜곡으로 인해 심각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문장은 그나마 다시 살펴볼 여지라도 있다. 하지만 같은 문장을 반복적으로 읽는 사람은 목적 독서를 제외하면 드물다. 여기서 나타나는 현상이 문장 해석의 오류다. 훑어 읽기로 넘긴 문장은 편향의 기억을 만들고, 분명 읽었다는 행위의 결과를 신뢰하게 된다. 바른 문장의 해석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신중함과 지식이다. 편향적 해석은 대강 보고 넘어가는 자동 읽기의 잘못에서도 기인하지만, 단어 자체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리 단어는 대부분 한자어로 이루어졌다. 발음이 변형되어 순수 우리말로 한글 사전에 실린 단어도 어원이 한자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요즘 한자 문화와 거리가 있는 젊은이들의 단어 이해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최근 나온 통계는 매우 다르다. 오히려 5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문해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도 작가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해석을 하고 기억마저 구멍이 숭숭 뚫려 왜곡된 지식의 조각만 습득하고 만다. 쉽게 말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전후 맥락이 끊긴 독서는 악마의 편집이 되어 뒤틀린 지식을 양산한다. 두려운 결과지만 이러한 현상은 보편적이고 독서가 독약으로 흡수된다. 잘못된 책 읽기의 습성이 만든 독약인 셈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실행은 어렵다. 답이 집중(集中)임을 알지만 생각은 자꾸만 뽕밭으로 달아난다. 잡념은 언해력과 문해력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독소다. 입맛대로 기억하는 단순한 읽음의 편식을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다. 집중과 분석의 훈련이다. 훈련의 최대 적은 잡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