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즉정(心卽情)
강구현 시인
필자의 졸작 수필에 대한 장미숙 수필가의 감상문을 원문 그대로 옮긴다.
<장미숙의 수필감상>
강구현의 수필 "나의 마음아 너는 어느곳에 머무느냐"를 읽고
그를 본 사람이있을까? 호모에렉투스(직립원인:
똑바로 선 사람)가 살았던 구석기 시대부터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 슬기로운 사람)가 진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변함없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세상에 이름을 널리 남긴 유명인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인 사람들이라고 그를 볼 수 있을까.
인간이 가진 물리적인 힘과 정신적인 능력으로도 벗길 수 없는 그의 실체, 어쩌면 그 때문에 인간의 삶이 유지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를 알아버린다면 세상은 마치 꿰맞춰 진 퍼즐처럼 재미없을 테니 말이다. 정해진 퍼즐을 맞추는 것과 퍼즐을 만들어나가는 것의 차이, 그를 알 수 없으므로 그를 향해 가는 끝없는 여정 앞에 사람들의 생 또한 다양하게 펼쳐지고 이뤄지는 것일 거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의 실체를 파악해보려 애쓴다. 그를 알 수만 있다면, 그를 보고 조종할 수만 있다면 그건 마치 신처럼 사람들 속에 군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인간의 욕망은 때로 모든 걸 초월한다. 자신이 뜻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죽음도 불사하지 않을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를 알기 위한 노력은 그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까. 그는 하나가 아닌 상황과 때에 따라 수천 번 변신을 거듭하는 데다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도 없다. 그저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게다가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달라 어떤 게 그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그를 볼 수 없는 게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다. 희로애락을 다 품고 있는 천의 얼굴이다. 무한히 강해졌다가도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함을 마다치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미소를 보내다가도 흉악한 무기를 휘두르기도 한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다가도 박장대소로 돌변한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그에게 과연 본 모습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그를 따라가야 하는가. 그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가.
희 · 로 · 애 · 락, 그가 머무는 곳에 따라 그를 품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는 도대체 어디에 살며, 어디에 머물러 있고, 무엇을 소망하는가?
여기 영광의 바람과 칠산 바다의 파도 소리를 사랑하는 그가 있다. 그는 현재를 살지만, 과거의 흔적을 끊임없이 의식한다. 과거는 한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순간순간 함께 했던 모든 것, 이를테면 집과 주위 풍경, 집을 둘러싼 나무들까지 기억 속에 살아있다. 바람 소리와 햇빛, 사람들과 특정한 냄새도 기억의 한편에 머물러 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어 현재의 삶에 추임새를 넣는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 모두 섬인 것을/ 천만이 모여 살아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욕심에서/ 질투에서/ 시기에서/ 폭력에서/ 멀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떠 있는 섬/ 이럴 때 천만이 모여 살아도/ 천만이 모두 혼자인 것을/ 어찌 물에 뜬 솔밭만이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이생진의 <외로울 때>
외로움은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 같다. 어느 순간 찾아올지도, 그리고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다. 만약 누군가 ‘외로움’을 잡을 수만 있다면 견고한 철창에 가둬 버렸으리. 외로움은 인간을 한없이 나약하게 만드는 대적할 수 없는 의식意識이기 때문이다.
별루(別淚:이별의 눈물)도 없이, 별배(別杯:이별의 잔)도 없이, 별부(別賦:이별의 노래)도 없이, 별사(別辭:이별의 인사)도 없이, 별수(別愁:이별의 슬픔)도 모른 채, 별장(別章:이별의 시) 한절구도 남기지 않은 우리들의 별로(別路:이별의 길) 위엔 별후(별후:이별 뒤)의 별한(별한:이별의 한)과 별정(別情:이별의 정)만이 샤를르빌의 고독한(상처받은) 영혼, 랭보의 그림자처럼 남아있네요.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위의 문장에는 행간에 외로움이 씨알처럼 박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날은 오고 여름 바다는 푸른 웃음을 흩날릴 것이고 소소한 가을바람은 누군가의 옷자락 속에 숨어 사랑을 노래하리. 그리고 사락사락 밤눈 내리는 겨울밤이 어김없이 올 것이고, 그렇게 세월은 바퀴처럼 돌고 돌아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정답고 포근한 날들을 연모하지만, 세상은 인정사정없이 앞으로만 내달리고 그 속에 묻혀 가는 인간의 정서는 또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가. 잡을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세월 앞에 그저 탄식할 밖에 달리 도리가 없음이다. 우리 모두에게 넋두리나 푸념이 필요한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살아가는 건 마음을 아우르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현재 자신의 처지가 진흙탕 길이든 꽃길이든 불행을 노래하는 것도, 희망을 노래하는 것도 마음이 할 일이다. 그 마음,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눈물과 웃음을 생산하는 신비함의 원천.
“나의 마음아 너는 지금 어느 곳에 머물고 있느냐?”고 작가가 되물으며 희망을 가슴에 품는 일이야말로 원초적인 감정인 쓸쓸함과 정면으로 맞장을 뜨는 일일테다.
“기죽지 말지어다. 이 세상 모든 마음이여! 머지않아 봄꽃 흩날릴 새날이 올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