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안자(晏子 또는 안영)’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정승이었다.
그는 자신의 언행이나 행적을 적은 “안자춘추(晏子春秋)” 외에도 좌전, 사기 등 여러 간행서에 그의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을 만큼 박학다식했으며 정치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면서 일세를 풍미한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의 생김새나 풍채는 볼품이 없었지만 검소하고 청렴한 성격으로 강직한 직언을 자주하였으며 직언을 할 때는 적절한 비유를 통해 비꼬는 일이 많아서 군주가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을 자주 취했는데 실제 의미로는 거의 모욕에 가까운 강도 높은 비난을 했어도 죽을 때까지 탄핵 당하는 일 없이 오히려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한 번은 안자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초나라의 영왕은 제나라는 물론 천하에 명성이 높은 안영의 기마저 눌러주고 싶어 몇 가지 모욕적인 질문을 던졌다.
초 영왕이 키가 6척 밖에 안되는 안자의 외모를 비하하며 대뜸 "제나라에는 인재가 없는가? 왜 자네 같이 못난 사람이 왔는가?"라고 비꼬자 "제나라에 어찌 사람이 없겠습니까. 단지 우리나라가 외국에 사신을 보낼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큰 인재는 큰 나라에 보내고, 작은 인재는 작은 나라에 보내는 것입니다. 저는 가장 작고 못났기 때문에 가장 작고 못난 나라에 왔으니 대왕께서는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받아쳐 초 영왕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때 마침 영왕의 지령을 받은 포교가 죄인을 포박하여 그들의 앞을 지나갔다.
영왕이 물었다. “여봐라. 그 죄인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이 자는 제나라에서 왔사온데 남의 물건을 훔쳤기에 잡아가는 중입니다."
영왕은 드디어 반격할 거리를 찾았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본시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도둑질을 하다 잡혀 오는 이들은 한결같이 제나라 사람이냐?"
그러자 안자는 또 주저없이 말을 받아 쳤다.
”강남에서 자라는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량한 제나라 사람이 이곳에 와서 도적질을 했다면 그것은 분명 토질이 좋지 않은 탓일 것입니다."
영왕은 그제서야 비로소 굳은 얼굴을 펴며 사과를 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처음부터 욕보일 생각은 없었다만, 선생의 이름이 사해에 떨치므로 은연 중에 그 재주를 한 번 엿보고 싶어 시험을 해보았으니 너그럽게 이해를 해달라."
성공한 지도자의 유머
고래를 막론하고 성공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유머를 잘 한다는 사실이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킨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대통령이 웃어야 국민이 웃는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링컨은 원숭이를 닮은 듯한 외모 때문에 상대 후보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는데 어느 중요한 유세에서 한 후보가 이를 빗대어 비방한 적이 있었다.
“당신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 인격자야!" 라고 하자 링컨은 “내가 정말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 중요한 자리에 왜 하필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라며 응수했다.
상대방이 인간의 얼굴과 원숭이를 닮은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헐뜯었으나 맞대응 대신 재치있는 유머로 순간을 넘긴 덕분에 링컨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었으며 그 여세로 대통령에도 당선될 수 있었다.
유머와 낭만이 있는 정치
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로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도 곱게 하면 때로는 상대방을 감화시켜 큰 빚도 탕감을 받을 수 있다는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고운 말도 사납게 비틀어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작금의 우리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자고 나면 치고 패고, 서로 잡아 먹을 듯 으르렁대며 악담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정치인들에게 안자 같은 기지와 재치있는 말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인가.
링컨이 자신을 원숭이에 비유하는 상대방에게 욕을 퍼붓거나 똑 같이 악담을 했다면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상시 얼굴을 마주할 때면 한없이 정겹고 다정스럽던 사람들도 일단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말이 거칠어지고 행동거지가 변해가는 원인은 순전히 여의도의 토양 탓일까.
그래서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땡자가 열린다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