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대통령에 관한 소고

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2025-06-16     영광신문

갑자기 정부가 국민 앞에 나타났다. 3년 만이다. 국가 전반적인 운영에선 길어도 너무 긴 기간이었다. 그만큼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국민은 어려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젠 정상으로의 복구를 향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정부와 한 몸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을 향한 정화 작업 역시 시작되었다. 스스로 빚은 결과이다. 사정기관이 정부의 권력과 결탁을 하면 단 2~3년 만에 국가의 근간을 결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고, 이 뒤에 숨어서 사익을 추구한 무리가 두더지처럼 땅속을 헤집으며 식물 뿌리를 작살내고 있었음 또한 알았다. 비뚤어진 이 상황을 되돌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다름아닌 대통령의 의지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몇 주 전까지 보았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조선시대의 왕권보다 권력이 강하다. 그래서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총리와 업무 분담을 통한 권력의 분산을 시도했었다. 결과는 오히려 자신의 입지만 곤란해지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의도까지 폄하할 필요는 없다.

검찰청을 폐하고 공소청을 설립한다는 소식에 귀보다 먼저 가슴이 뚫렸다. 권력과 한 몸이 되어 휘두르는 사정기관의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사법부와 결탁하면 국민이 선택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도 날려버릴 수 있다는 착각 혹은 망상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이제 새로 들어선 국민 주권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와 맞서보길 권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국민은 가장 먼저 내란 특검을 말했다. 내란 당사자는 대통령이지만 이를 받치고 있는 세력이 검찰 권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행동은 군과 경찰이 나섰지만, 기획하고 이들을 조종한 무리는 당시 여당과 대통령실에 뿌리를 내리고 기회를 보던 검찰 조직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검찰의 수괴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조직이 막강한 권력자 대통령을 수반으로 모시고 휘두른 권력은 조선시대의 왕권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참고로 조선의 왕권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유력한 신하들의 파당을 넘지 못했다. ‘아니 되옵니다를 단체로 합창을 해대는 신료들을 거역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고 오히려 왕권의 약화를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왕의 권위가 흔들리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임진왜란이다. 선조는 항전이 아닌 도망을 선택했고, 백성은 궁에 난입해서 노비 문서를 관장하는 장예원과 함께 궁을 불태워 버렸다. 이는 신분제의 부분적인 파괴를 불렀고, 도망가는 선조의 어가를 막고 농성하기도 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왕이 스스로 파기한 왕의 역할론에 기인해 시작된 것이다. 선조의 왕으로서의 패륜을 덮어주고 원상 복귀시킨 사대부가 궁에서 거대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기다. 사대부 세가를 무시하거나 맞섰던 왕은 모두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왕의 독살설이다. 조선 왕 27명 중에서 독살설이 대두된 왕은 경종, 정조, 철종, 고종, 인종, 예종 6명이다. 유배 혹은 사사된 왕까지 더하면 10명이 넘는 숫자다. 강제 죽임을 당한 왕이 30%가 넘는다는 이야기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 약해지기 시작한 왕권과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시 왕보다 훨씬 잔혹하고 사악한 범죄를 저지른 현대의 대통령 중에 강제로 죽임을 당한 사람은 없다. 사형 선고를 받아도 풀어주고 경호까지 해주며 행복한 천수를 누리게 해주었다. 이것이 비정상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윤석열의 당당함은 여기서 나올 것이다. 어차피 사면받고 남은 삶은 축적해 놓은 재물로 행복하게 술 마시며 즐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몇 년 후에 풀려나 전두환처럼 여생을 행복하게 지낸다는 것에 개인적인 내기를 건다. 정의를 관용과 포용 그리고 용서로 해석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한, 바뀌지 않을 착한 척 코스프레의 전형이다. 정의란 적합한 처단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