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를 지역다움으로
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각 지자체는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매년 대규모 예산을 들여 축제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축제 남발”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는 무관한 K-pop 가수 공연이나 전국민 노래자랑식의 무대가 주를 이루면서, ‘지역축제’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다. 물론 축제가 지역민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외부인과의 교류를 촉진하며, 일시적이나마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정체성과 방향성을 잃은 축제는 오히려 예산 낭비에 그치고, 지역민들의 피로감을 유발하며, 외지인에게는 단기적 소비 외의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지역 고유의 자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가진 역사, 생태, 산업, 인물, 전통문화 등은 고유한 이야기와 정체성의 원천이다. 이를 토대로 축제를 기획할 때 비로소 외부와 차별화된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예컨대, 강원도 정선의 아리랑제나, 안동의 탈춤축제는 지역의 전통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두 번째로는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많은 축제가 외부 기획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구성되고, 주민들은 단지 관객으로만 참여하는 구조다. 하지만 지역민이 스스로 기획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축제는 더욱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마을 어르신들의 구술 역사나 토박이 장인의 기술을 담은 체험형 콘텐츠는 그 어떤 유명 가수의 무대보다도 지역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
셋째, 축제의 양적 팽창보다 질적 심화를 지향해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형식적인 일정이나 무대 위주의 구성이 아니라, 체류형 프로그램과 지속 가능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한 번 더 오고 싶은’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와 문화 전문가, 지역민 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사람을 부르는 지역’이 아닌, ‘지역이 말을 거는 축제’가 필요하다. 보여주기식 가요제에서 벗어나, 그 지역만이 가진 결을 섬세하게 살려내는 축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역 문화의 자존심이며, 지속 가능한 관광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지역 축제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 반드시 고민해야 할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지역 문화예술인의 활용이다. 현재 전국의 수많은 축제에서 지역 예술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방송에서 보던 연예인들, 기획사 중심의 무대 공연, 그리고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중가요 중심 프로그램이다. 과연 이런 구성이 지역 축제의 본질에 부합하는가? 지역 문화예술인은 지역의 역사, 정체성, 공동체성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이 가진 예술적 자산은 단순한 공연이나 볼거리 이상의 지역의 혼을 담고 있다. 지역 출신의 연극인, 국악인, 미술가, 공예인, 무형문화재 보유자 등은 단지 무대 위에서 소비되는 존재가 아니라, 축제 전체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지역 예술인을 축제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예술인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산 배정 과정에서부터 지역 예술단체와 협의체를 구성하고, 해당 지역의 예술 생태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일회성 초청이 아니라 지속적인 협업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