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돌봄’ 시대가 요청하는 것
이민희 (사)여민동락공동체 이사
200년만의 폭우다. 7월부터 8월초까지 내린 극한 호우가 엄청난 파괴력으로 전국을 강타했다. ‘폭우 참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7월 한 달간 내린 비로 도로와 주택이 침수되고 하천이 범람하며 산사태가 일어나는 등 대규모 피해가 잇따랐다. 이 비로 발생한 이재민만 2천명이 넘었고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심화에 따라 국지적으로 단기간에 내리는 폭우의 빈도와 강도는 모두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번 호우 피해의 대부분이 고령화, 과소화 된 소멸위기 지역에 집중됐다는 점은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군민 15명이 산사태와 급류로 사망한 경북 산청군의 경우, 노인 인구가 대부분이어서 자원봉사자들이 떠나고 나면 복구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재정자립도가 낮고 자원의 격차가 현저한 소멸 위기의 농촌지역일수록 극한 호우와 같은 기후 재난 극복을 위한 자립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극한 호우와 ‘90 평생 처음 겪는 더위’에 어르신들은 유례없이 힘든 여름을 보내고 계신다. 폭우와 폭염이 장시간 반복되니 어르신들의 건강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이렇게 날씨가 무서운 건 처음”이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혼자 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오신 어르신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긴 시간 더위에 노출된 탓에 기운이 하나도 없이 축 늘어진데다 어지럼증까지 호소하셨다. 얼른 병원으로 모셔 진료와 처방을 받으니 다행히 상태가 안정되셨다. 극단적인 날씨 때문에 월요일 아침의 주간보호센터는 긴장의 연속이다.
‘기후’와 ‘돌봄’을 결합시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돌봄현장에서 가장 먼저 체감한다. 기후 위기 시대의 도래가 ‘취약한 존재’라는 인간의 속성을 더 전면적으로 부각시켰다. 기후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광범위하고 파괴적이다. 무너진 삶터를 복구하고 회복하는 데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본디 취약한 존재인 인간은 무소불위한 자연의 힘 앞에서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기후와 돌봄을 연결하는 사고, 나아가 돌봄을 중심으로 한 인식의 전환과 행동의 변화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생애주기별로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돌봄은 인간 존재의 필요충분조건이자 사회적 역량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인이지만, 가정 내 여성의 의무로 강요되거나 사회적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에 머물러왔다. 이제부터는 ‘함께 돌봄’을 통한 기후 위기 극복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해야 한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내 이웃을 보호하고,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예방과 회복을 위한 돌봄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 방식이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지구 환경의 안정기였던 ‘홀로세’가 지나고 지구역사상 전례없는 불안정기인 ‘인류세’가 도래했다고 경고한다. ‘인류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종 중에서 ‘인간’이라는 단일한 생물종으로부터 발생한 위기라는 특징을 가진다. 자본주의의 축적과 발달 과정은 자연 환경의 약탈과 훼손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피해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이 감당해야 한다. 인간을 위한 성장과 번영의 대가로 인간의 생존이 위협당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만 설명될수는 없는 것이다. 생태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공생하는 인간)라는 개념을 역설하기도 했다. 호모 심비우스는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 공생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의미한다. 인간-비인간 존재의 상호 돌봄 관점의 확립은 축적과 파괴의 방식을 폐기하고 탈성장, 탈소비 방식으로의 전환을 이루어가는 데 있어서도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위기의 양상으로 볼 때, 지금은 전환의 방향을 두고 갑론을박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전환의 속도를 끌어올릴지를 고민할 시기이다. 전환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현실적 공간이 바로 지역이다. 기후재난이 역설적으로 지역을 재건하는 기회,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주도하는 지역거버넌스가 기후위기에 취약한 인프라를 관리하고, 기후 돌봄의 계획과 실행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후 위기의 물리적인 장소인 ‘지역’으로부터 대안이 나온다면 국가 주도의 대규모 기후 위기 완화 정책에도 돌파구가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전환과 돌봄 중심의 지역사회 재구조화라는 새로운 정책 아젠다는 아무리 중앙정부에서 계획을 세우더라도 결국 지역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기후돌봄을 실현하는 미래지향적인 ‘기후돌봄공동체’ 구축의 희망은 지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