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귀(錢鬼), 돈의 노예가 된 권력자들

곽일순 수필가·사진가

2025-08-11     영광신문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회의 도중 휴대전화로 주식 거래를 하다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되는 일이 있었다. 그가 매매한 주식은 실명도 아닌 차명 계좌를 통한 것으로 드러났고,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여론은 급격히 싸늘해졌다. 결국 그는 출당되었지만, 정치와 법적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불과 얼마 전에도 다른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기간 중 가상화폐를 거래하다가 모든 당직에서 물러난 일이 있었다. 잇따른 사건을 접하며 사람들은 묻는다. 이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인가.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 재산을 더욱 불리는 데 집착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원전 고대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인간의 본성이다. 중국 한나라의 승상 석현(石顯)’은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의 정점에 있었으나, 뇌물을 받아 사리사욕을 채우다 결국 처형당했고, 로마의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는 정치적으로는 삼두정치의 일원이었지만, 도를 넘은 탐욕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부자들의 집이 불에 타면 값싸게 사들여 되팔았고, 전쟁터에 나가서는 공보다 전리품에 더 관심을 가졌다. 공공의 이익보다는 사익을 앞세운 결과, 그는 전장에서 처참하게 죽었고, 금으로 입이 채워진 채 로마로 보내졌다. 이는 금만 추구한 자의 최후라는 조롱의 메시지였다.

조선시대에도 전귀의 전형이 있다. 윤원형, 김안로, 임사홍 등은 권력을 이용해 부정 축재에 몰두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은 정쟁을 벌이며 상대 정적을 제거하고, 남은 자리를 통해 사돈, 친척, 측근에게 권력을 분산시켰다. 궁궐 안팎에서 뇌물로 관직을 사고파는 일이 공공연해졌고, 결국 조정은 썩고 나라의 기강은 무너졌다. 그 끝은 대부분 비참했다. 멸문지화, 유배, 사약 등 권력의 말로는 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부와 권력을 함께 가지면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는 오래된 교훈을 안겨준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정치인은 물론 사회 각계의 고위층 인사들이 여전히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높은 자리에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재산을 불리고, 그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마치 사소한 실수라도 한 듯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더 큰 문제는, 다수의 국민이 이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반복되는 사건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악행의 비일비재(非一非再)가 만들어 놓은 무감각이다.

전귀(錢鬼)’라는 말이 있다. 돈에 홀린 사람, 돈의 귀신이 되어 도를 잃은 자를 일컫는다. 체면과 명예는 물론, 심지어 법의 가치까지도 내던지며 오직 돈만 좇는 인간의 형상을 상징하는 말이다. 전귀는 일반 시민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과 명예, 지위를 가진 자들이야말로 전귀로 타락할 가능성이 높다. 가진 자일수록 더 가지려 하고, 높은 자리에 앉을수록 더 많은 것을 통제하려 들며, 마침내 그 탐욕은 자신의 궤멸로 이어진다.

오늘날 정치인이 지위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주식과 코인에 몰두하고,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에 연결하는 일은 단순한 일탈로 볼 수 없다.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이며, 동시에 개인의 도덕적 파산을 드러내는 징후다. 국민의 대표가 국민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기 통장의 동그라미 숫자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은 정치적 신뢰를 잃는다. 그리고 신뢰가 무너지면 정치인은 불신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만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이 사람을 지배할 때 그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는 전귀(錢鬼). 그리고 그런 전귀들이 국회를, 정부를, 혹은 언론을 조금씩 잠식해 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 반복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