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감추기 위해 잘못을 이용하는 권력의 심리
곽일순 수필가·사진가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문제는 그 잘못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있다. 어떤 이는 반성하며 교훈을 삼고, 또 다른 이는 은폐하려 하며, 더 나아가 그 잘못을 역으로 활용한다. 정치 지도자의 역사 속에서는 이러한 왜곡된 심리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사를 돌아보면, 각 인물이 과거의 부끄러운 행적을 감추기 위해 그 경험을 역으로 정치적 무기로 삼았던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대통령 시절 각종 부조리와 독립자금 유용 문제로 탄핵을 당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해방 후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오르자, 그의 추종자들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가 발을 들였던 임시정부의 명예로운 역사를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다. 최근 극우 단체 ‘리박스쿨’이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1945년을 건국절로 주장하는 것 역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의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잘못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다. 박정희의 경우는 더욱 선명하다. 그는 청년 시절 남로당 활동으로 체포된 전력이 있었다. 형 박상희가 공산주의 운동에 깊이 관여한 탓에, 그의 삶은 공산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이후 그는 누구보다 강력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멸공’의 기치를 앞세우며 정치적 정당성을 쌓았고, 심지어 동백림 사건과 같은 무리한 간첩 사건을 조작하기도 했다. 이는 공산주의라는 과거의 그림자를 지우는 동시에,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은 과거를, 가장 집요한 무기로 바꿔버린 전형적인 심리적 투사의 사례다. 전두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수많은 국민을 학살한 책임자였다. 그러나 스스로는 혼란기에 나라를 안정시켰다고 주장하며 정권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민주정의당이라는 당명을 내세운 것은 아이러니라기보다 자기 합리화의 전형이었다. 가장 부정의한 행위를 저지르고도 ‘정의’를 내세운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합리화(rationalization)’라는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폭력을 안정과 질서라는 명분으로 도색해 내면의 불편함을 지우려는 것이다. 이명박은 경제 대통령을 자임했다. 그러나 그의 ‘경제’는 국가 경제가 아니라 사적 경제였다. 대규모 개발 사업과 정책은 국민을 위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측근과 본인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설계되었다. 공적 명분을 사적 탐욕으로 교묘히 전환한 사례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도구화(instrumentalization)’라고 할 수 있다. 즉, 집단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분이 사실은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현상이다.
최근 탄핵과 구속에 이른 윤석열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본래 범죄를 다스리는 검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법과 원칙’이라는 구호는 그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정작 검사의 지위는 범죄의 응징보다는 범죄를 활용하는 위치로 변했다. 사정기관을 정치적 무기로 삼아 정적을 제거하고, 스스로와 측근의 범죄를 은폐하는 데 주력했다. 범죄를 다스려야 할 자가 범죄를 통해 권력을 유지한 셈이다. 이는 권력자의 방어기제가 어떻게 극단적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경우, 그 무게는 더욱 크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과 폭력을 덧칠하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역사를 통해 확인했듯이, 잘못을 잘못으로 직시하지 않는 권력은 결국 국민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다. 권력자의 잘못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기록하는 일,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가져야 할 가장 강력한 심리적 방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