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면죄부란 부자가 죄를 짓고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인증서였다!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2025-10-20     영광신문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면죄부라는 제도가 만들어진 건 11세기 무렵 십자군 전쟁 때의 일이었다.

금전이나 재물을 바친 사람에게 죄가 사면되었음을 증명하는 면죄부는 중세 로마 카톨릭 교황청에서 발행을 했다.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이슬람군이 점령한 기독교 성지를 탈환한다는 명분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는데 십자군의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십자군에 참여하여 전사하거나 살아서 돌아오는 이들에게 신을 대신하여 지난 죄의 벌을 면제해 주겠다고 공표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으며 십자군 전쟁도 마찬가지였는데 우르바노 2세는 교황의 권한으로 직접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전쟁에 필요한 기부금을 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죄의 벌을 면제해 주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특히 귀족들이 돈을 내기 시작했으며 교황청에서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도 면죄부에 의해 구원이 가능하다고 선언함으로써 면죄부 판매를 강압했다.

1500년대,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또 다른 목적을 위해 면죄부를 이용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성 베드로 대성당의 교회 건축을 지시하면서 각처에 있는 예술가들을 로마에 불러들여 바티칸 성당 내부를 화려하게 꾸미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건축 자금조달을 위해 고민하던 그가 생각해낸 것이 희대의 면죄부 판매였다.

그는 1506년에 희년(성경에 근거한 제도로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뒤 50년마다 돌아오는 해) 면죄부를 선포하고 면죄부 판매로 얻은 수익을 성당 건축 기금에 사용했다.

면죄부 판매는 교황청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는데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리모델링할 막대한 자금조달을 위해 도미니크 수도회의 한 신부에게 면죄부 판매를 의뢰했다.

교황의 특명을 받은 요한 테첼 신부는 지옥불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을 펼쳐놓고, 면죄부를 팔면서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여러분을 향해 애원하며 울부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 우리는 무서운 고통 중에 빠져 있는데 당신들은 적은 돈으로 우리들을 건져낼 수 있지 않소!’ 여러분은 저들을 건져내기를 원치 않습니까? ···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 동전이 여러분의 부모들을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동전이 돈궤 속에 딸깍하고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저들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테첼의 설교를 들은 가톨릭 신자들은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연옥의 불구덩이에서 구하기 위해 앞다투어 돈을 주고 면죄부를 구입했다.

면죄부의 가격은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평민들은 한 장당 ‘4분의 1플로린을 내야 했는데 지금의 화폐가치로 따진다면 10만원 정도하는 가격이다.

당시 이 돈이면 6개월치 월세를 낼 수 있었고, 송아지 3마리를 살 수 있었으며 평민들이 이 돈을 모으려면 몇 달 동안 한 푼도 쓰지 않아야 가능한 돈이었다.

한편 테첼은 영혼구원을 담보로 얻은 수익금의 반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에 사용했고, 반은 고위 신부들과 함께 일정 몫을 나눠 가졌다.

미래면죄부라는 희한한 증서도 있었다.

현대의 보이스 피싱이라고나 해야 할까, 면죄부를 이용한 범죄가 있었다.

16세기 초 도미니크의 수도사인 요한 테젤은 로마 교황청의 위임을 받아 전국을 순회하며 면제부를 파는 성직자였다.

그는 돈이 현금함에 떨어지는 순간 죽은 조상이나 친구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홍보하며 면제부를 엄청나게 팔아치웠다.

그리고 막대한 돈을 모은 후 로마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혹시 미래의 죄에 대한 면죄부도 살 수 있을까요? 큰 돈을 드리겠습니다.

이에 돈에 눈이 어두운 그는 가능하다고 말했으며 그에게 돈을 받고 미래면죄부를 팔았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모은 거액의 돈을 들고 도시를 빠져나갈 때 그 사람을 다시 만났는데 이번에는 그 사람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해 그의 모든 돈을 빼앗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죄를 염두에 두고 먼저 당신에게 미래 면죄부를 샀던 것이오.

테젤이 강도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자 지역을 다스리는 게오르게 공작은 누가 감히 성직자에게 강도짓을 하느냐며 분노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한다.

면죄부 판매가 결국 루터의 종교개혁을 불러왔듯이 지금 만연하고 있는 해외 납치사건이나 보이스피싱 등 각종 사기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특단의 개혁조치가 필요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