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萬古)에 회자(膾炙) 될 사랑과 이별의 정한사(情恨事) 제4회
강구현 시인
- 불심으로도 제어되지 않는 청춘의 끓는 피-
누구일까?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어떤 모습일까?
속세의 모든 인연과 업보를 끊어버리고 한평생 부처님께 귀의(歸依)하여 구름처럼 순결한 마음으로 살고자 다짐했건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어떤 사람,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가슴 저 깊은 곳의 상한(傷寒)이 되어 봄바람으로 살랑댄다.
化雲心兮思淑貞(화운심혜사숙 정)
洞寂滅兮不見人(동적멸혜불견인)
瑤草芳兮思芬蒕(요초방혜사분온)
將奈何兮是靑春(장내하혜시청춘)
구름 같은 마음으로
한평생 순결하게 살자고 맹세 했건만
깊은 골짜기 고요한 절간
사람은 없네.
꽃들이 피어날수록
봄 마음 이리도 설래는가?
아- 어이할거나
나의 이 꽃다운 청춘을!
- 설요(薛瑤)의 시 반 속요(反俗謠)
스스로에게 수없이 다짐하고 맹세 하면서 여승이 되었건만, 막상 절집에서 살다 보니 사바세계와 이성에 대한 그리움은 억제하면 할수록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모닥'불 같이 봄날 아지랑이 같이.
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이 젊은 나이로 이 고뇌를 견디며 청춘을 압살해야 한다니...
아무리 다잡고 잡도리 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 것이 무엇인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에게 자연스레 전이될 수 있으리라.
거의 위험수위에 다다른 춘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방년 21세 된 여승의 파계(破戒) 직전의 몸앓이다.
그러나 그 것은 세속적 시각에 따른 천박함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생리현상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반란이며 항거인 것이다.
아- 젊음을 늙히기가 이리도 힘든 것이란 말인가?
이 시에서 요초(瑤草)는 봄날의 아름다운 꽃인 동시에 작자 자신의 이름이다. 그래서 그 쓰임새는 작자의 가슴 속에 맹동하는 춘심(春心), 춘정(春情 )을 암유하고 있다.
또한 분온(芬蒕 )은 어떤 향기 같은 것이 어지럽게 일어나는 모양이니 작자의 가슴에 피어나는 것이 구름이라면 그 것은 연운(戀雲)일 것이요 불길이라면 정념(情炎)일 것이다.
그 것이 도에 지나쳐 견디기 힘든 고뇌요 고통으로
느껴진다 할지라도 본질은 역시 향기로움이니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사분온(思芬蒕 )은 만고에 회자 될 묘어(妙語)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요초방혜사분온(瑤草芳兮思芬蒕)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속마음을 숨김 속에 그려냈으니 이 또한 천하 명구다.
단 28자로써 은근한 기품을 흐트리지 않으면서도 솔직 대담하게 그려낸 고농도의 표현이 만고에 빛나리라.
작자 설요는 신라 효소왕 때의 여류시인으로, 당나라에 가서 죄무장군(左武將軍)이 된 설승충의 딸이다.
1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낙망하여 중이 되었으나 젊은 나이의 끓는 피를 불심으로도 억제하지 못하고 마침내 21세 되던 해에 고시체(古詩體)로 반속요(返俗謠)를 지어 불계를 버리고 환속을 해서 곽진이란 사람의 첩이 되었다고 한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