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선/ 영광신문 편집위원, 영광초등학교 교사




 크산티페의 독백(獨白)



늘그막에 자식 키우려면


석수장이는 돌을 깨야지


허구한 날 몰려다니니


소크라테스여


너 자신을 알라




뜨거운 여름철에는


천둥 벼락도 치고


소나기도 퍼붓는 것


세상이 아무리 지껄여도


소크라테스여!


진정 사랑하였노라




천재도 양처(良妻)만나면


평범해지고


범부(凡夫)도 현처(賢妻)만나면


철학자 되리니


마술(馬術)에 능한 사람은


늙고 못난 말을 고르는 법


소크라테스여


채찍보다 당근이 낫더이까?




- 사족(蛇足) - 누명을 쓰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다. 역사에도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이 발견되어 종종 그 진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면 역사상 가장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Xanthippe)라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기원전 469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석조가(石彫家)인 아버지와 산파(産婆)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일생을 그곳에서 철학의 여러 문제에 관한 토론으로 보냄으로서 서양 철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 때까지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의 원리에 대해 묻곤 하였는데, 소크라테스에서 비로소 자신과 자기 근거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내면(영혼의 차원)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그는 책을 남기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제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같은 책들과 크세노폰의 회고록, 그리고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 등에 서술된 내용을 통해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 내용이 서로 달라 누구를 얼마만큼 믿어야 할지가 문제이데, 철학사에서는 이것을 ‘소크라테스 문제’라 한다.


 


가족 관계로는 아내 크산티페와 사이에 3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의 아내 크산티페는 남편의 언동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욕지거리로 남편을 경멸하여 서양사에서 악처의 대명사로 전해 내려온다. 과연 그럴까?


 


소크라테스는 두 눈이 튀어 나오고 코는 짜부라지는 등 형편없는 추남(醜男)이었다. 그는 나이 오십에 이르러 서른 살 연하의 크산티페와 결혼한 것 같다. 그렇다면 크산티페는 왜 이렇게 나이 많고 볼품없는 소크라테스와 결혼했을까? 추측하건데 항상 젊은이들에 둘러싸여있는 사회적 인기와 명성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너무 혹독한 현실이었다. 가난 그리고 가난. 오죽했으면 소크라테스는 가난한 삶으로도 유명한 철학자이다. 맨날 일은 하지 않고 젊은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토론으로 일삼는 무능한(?) 남편과 세 아들을 양육하려면 젊은 그녀는 매일 돈벌이에 바빴으리라. 그래서 바가지를 긁는 일도 많았을 것이고.


 


그날도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향해 바가지를 긁던 크산티페는 참다못해 물바가지를 퍼붓는다. 조금 심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지만 크산티페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저것 봐, 천둥 뒤에는 항상 소나기가 떨어지는 법이야.” 하면서 능청을 떤다. 마치 어린 아내의 앙탈 정도로 가볍게 넘어가는 모습이다. 그도 자신을 알기에. (“나는 단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안다. 그것은 내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다는 것이다.”처럼 그는 모른다는 말을 자주 썼다. 그러나 자기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것을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라 한다.)


 


그렇다. 전혀 다른 개성이 만나 만든 부부라는 것은 타인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이해하기 힘들고 위태하게 보이기까지도 한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질서들이 있고, 또 고운 정 미운 정으로 아옹다옹 잘들 살아가는 것이 부부이다. 그래서인지 플라톤이 지은 "파이돈"에는 두 부부는 서로 의가 가득한 사이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도 역사는 왜 그녀를 그토록 가혹하게 몰아붙이는가? 그녀의 그런 악행(?)이 등장한 곳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이다. 어차피 연극이란 과장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역사는 주인공을 돋우려 주변사람들을 내려 깎는 버릇이 있다. 그것들이 합작하여 크산티페를 악녀의 대명사로 만든 것이다. 아무리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소크라테스는 청소년을 선동하는 위험스러운 인물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당시의 사형은 신속히 진행되었다. 소식을 듣고 크산티페는 막내아이를 품에 안고 달려온다. 그리고 통곡한다. 얼마나 통곡이 심했던지 형을 집행할 수 없게 되자 소크라테스는 친구 크리톤에게 애원한다. “오, 크리톤, 제발 이 여자를 집으로 데려다 주게.” 결국 크산티페는 끌려 나갔고, 소크라테스는 당근 즙에 섞은 독을 마시고 숨을 거둔다. 기원전 399년 4월 27일. 향년 70세.


그가 남긴 말 중에는 ‘너 자신을 알라’


 


‘아무튼 결혼은 하는 게 좋다. 양처를 만나면 행복해질 테고, 악처를 만나면 철학자가 될 테니’


‘마술(馬術)에 능(能)한 사람은 일부러 거친 말을 고르는 법이네. 사나운 말을 다룰 수 있다면 다른 말도 쉽게 부릴 수 있으니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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