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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현암(玄庵) 이을호 박사(1910~1998)의 사상은 묵직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는 학자이면서도 실천가였고, 사유의 깊이와 삶의 현장을 함께 품은 인문주의자였다. 그의 철학은 지식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사유의 중심’을 다시 세우려면, 현암이 걸었던 길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이을호 박사는 일찍이 다산 정약용의 사상에서 출발했다. 그에게 다산은 단순한 실학자가 아니라, 현실을 개혁한 개신유학자(改新儒學者)였다. 그는 유교를 도덕의 학문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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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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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현암 이을호 선생의 재조명이다. 영광의 들녘과 바다에 한 시대를 꿰뚫는 사상가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기에 그렇다. 현암 이을호 박사(1910~1998). 그는 의사(醫藥), 학자(學者), 그리고 사상가였다. 한 사람의 이름 앞에 이렇게 수식어가 겹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한길만을 걷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늘 우리 민족의 길을 묻고, 우리 사유의 근원을 탐구했다.이을호 박사는 영광에서 태어나 일찍이 한문과 경서를 익혔다. 일제강점기의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그는 민족의 얼을 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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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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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자, 가장 멀어진 산이다. 바다 건너 먼 외국은 갈 수 있어도, 불과 수백 킬로미터 북쪽의 그 산은 갈 수 없다. 그 길은 17년째 닫혀 있다. 이 현실은 단지 여행의 불편함이 아니라, 분단의 비극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아래 남북이 처음으로 제도화된 교류를 실현한 결과였다. 남측 국민이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었고, 북측 주민이 남측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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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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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 곳곳에서 중국인을 향한 혐오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서울 명동과 주요 관광지에서는 “차이나 아웃”, “CCP 아웃”이라는 구호가 등장하고, 유튜브와 SNS에는 중국인 입국을 범죄나 음모와 연결하는 영상이 넘쳐난다. 혐중 정서는 단번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교류가 급속히 늘었지만, 그만큼의 불신과 경쟁의식도 함께 자라났다. 2017년 사드(THAAD) 갈등, 코로나19 팬데믹, 최근의 무비자 입국 논란은 그 불신에 불을 붙였다. 사회학자들은 이 현상을 ‘타자화의 구조’로 설명한다. 진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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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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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의 날 행사가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다. 직전 군수가 면민의 날을 따로 운영하던 것을 다시 예전처럼 통합 군민의 날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서로 장단점은 있겠지만 하나로 가는 게 옳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매년 가을의 문턱에서 치러지는 군민의 날은 우리 공동체의 에너지를 모으는 큰 축제다. 그동안 체육행사와 문화예술행사를 격년으로 번갈아 치러왔지만, 내년부터는 두 행사를 같은 날 동시에 개최하기로 했다. 지역민의 참여 폭을 넓히겠다는 의도는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체육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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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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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실 벽에 걸린 글귀가 있다. 수졸귀원전(守拙歸園田)이라는 글이다. 서예가 운암 선생의 작품으로, 글씨보다는 내용 때문에 걸어 놓은 글이다. 전원으로 돌아가서 졸렬함을 지키며 살겠다는 의미에서 아마도 느낌이 꽂힌 모양이다. 하지만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좁힐 수 있을까. 요즘 사회는 능숙함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더 빠르고, 더 똑똑하게, 더 눈에 띄게 살아가려 애쓴다. 그러나 오래전 동양의 선비들은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들이 귀히 여긴 덕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졸(守拙)’이다. 말 그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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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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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 속의 미래 기술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의 일상과 일터, 심지어 손안의 스마트폰 속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음성비서, 의료 진단 보조, 자율주행차, 그리고 생성형 언어 모델에 이르기까지 AI는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그 변혁의 한가운데 서 있는 우리는 지금, 두 가지 상반된 감정에 휩싸여 있다. 바로 희망과 두려움이다.먼저, 희망은 분명하다. 사용자 관점에서 Ai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전례 없이 제공한다. 학생은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고, 의사는 방대한 환자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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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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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전 세계 경제질서에 심각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구호 아래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삼지만, 실제로는 동맹국과 파트너를 상대로 관세를 무기화하며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물론, 한국 역시 철강과 자동차 분야에서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진출 한국 기술자 300여 명이 체포되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는 단순한 무역 마찰을 넘어, 미국이 동맹국을 대상으로 국제적 깡패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인식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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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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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광군을 비롯한 대한민국 출생률 위기는 단순한 복지와 재정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문화의 총체적 문제로 보인다. 선진국 가운데에서도 출생률 회복에 성공하거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현금 한 방’이 아니라 가족을 둘러싼 제도(돌봄, 노동시장, 세제·현금지급, 주거·보육 인프라)를 함께 설계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스웨덴, 독일 등 유럽 국가 및 일본과 OECD 권고를 바탕으로 나름 정리해 보았다.첫째,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가족수당과 세제 인센티브이다. 프랑스는 자녀 수에 따른 가족수당을 소득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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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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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최근 드러난 개신교 대표 목사들의 친미 청탁, 무속 신앙과 권력의 유착, 무속에 빠진 대통령 부부와 고위 공무원 비리 연루, 그리고 신천지, 부산을 기점으로 한 극우 교회, 전광훈 중심의 아스팔트 세력까지, 이 모든 것이 마치 국가의 바탕을 흔드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 내며 유사 종교가 사회 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한국과 닮은 듯 다른 나라들의 역사 속 사건들을 돌아보며 종교적 광신이 어떻게 정치와 얽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단편적으로 살펴보자.첫 번째는 가이아나, 존스타운(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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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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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를 돌아보면 곳곳에서 질서가 무너지고 도덕적 가치가 붕괴되는 현상을 목격한다. 스마트폰을 든 채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 작은 무례에서부터 공적 영역에서의 거짓과 위선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신뢰를 떠받치는 기둥들이 삐걱거린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다시금 ‘고전’으로 눈길을 돌린다. 고전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나 박제된 문헌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반추하고 내일의 길을 모색하게 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최근 중국 학자 리링(李零)의 저서 ‘상가구(喪家狗)’가 다시금 공자와 논어를 세상에 불러내고 있다. 우리말로 흔히 ‘상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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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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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인사다. 인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이자 최소한의 예의이며, 사회적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요즘 사회에서는 인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SNS가 발달하면서 소통은 많아졌지만, 그 소통 속에 따뜻한 정성과 예의는 오히려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자나 댓글로만 오가는 대화에서는 ‘고맙다’라는 말조차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전문으로 하다 보니 나는 자료 요청을 자주 받는다. 특히 관공서나 단체에서 사진이 필요하다며 부탁해 오곤 한다. 거절하기 어려워 자료를 무상으로 보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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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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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문제는 그 잘못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있다. 어떤 이는 반성하며 교훈을 삼고, 또 다른 이는 은폐하려 하며, 더 나아가 그 잘못을 역으로 활용한다. 정치 지도자의 역사 속에서는 이러한 왜곡된 심리가 극명하게 드러난다.대한민국의 대통령사를 돌아보면, 각 인물이 과거의 부끄러운 행적을 감추기 위해 그 경험을 역으로 정치적 무기로 삼았던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대통령 시절 각종 부조리와 독립자금 유용 문제로 탄핵을 당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해방 후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오르자, 그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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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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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전직 대통령 부부의 특검과 관련 재판은 단순한 사법 사건을 넘어 국민의 정서 깊숙한 곳을 건드리고 있다. 법정에서 드러나는 거짓말과 체면을 모르는 행동은 실망을 넘어 ‘국민으로서 부끄럽다’는 감정을 안겨준다. 체면은 몸 ‘체(體)’와 얼굴 ‘면(面)’이 합쳐진 말로, 단순히 얼굴의 모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몸가짐과 태도를 포함한다. 즉, 사람의 품위와 도리를 지키는 태도의 합체다. 그러나 체면은 지키기 어렵다. 옷깃을 여미는 작은 자세에서부터, 위기 속에서도 절제를 잃지 않는 침착함까지 요구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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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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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의 몰락은 단순한 정권 교체 이상의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그 시작점은 다름 아닌 언론 탄압이었다. 취임 초기, 미국 순방 중 잡음이 되었던 ‘바이든’ 대통령 관련 비속어 발언은 단순한 실언을 넘어 언론과 정권 사이의 긴장 관계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해당 내용을 보도한 MBC에 대해 대통령실은 가혹한 조치를 내렸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 금지라는 이례적 대응은 명백한 언론 배제였다. 이후 국민의힘은 MBC를 고발했고, 경찰은 이를 뒷받침하듯 해당 보도 취재진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고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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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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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른바 ‘리박스쿨’이라는 극우 교육 단체가 주목받고 있다. 이 단체는 아이들에게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영웅으로 칭송하며,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특정한 시각으로만 교육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세력은 ‘친북’ 혹은 ‘반국가적 존재’로 규정하고,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포장한다는 데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로 인해 4·19 혁명으로 쫓겨난 인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군사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장기 독재를 감행했다.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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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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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문화예술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한 지자체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지역은 문화재단은 물론 예술인을 위한 창작공간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는 향토 문화의 지속적 발전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다. 현재 백수에 폐교를 고쳐서 예술촌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몇 년째 하염없이 늘어지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금이야말로 지역 예술인을 위한 ‘예술촌’을 조성해 향토 문화를 한 단계 도약시킬 때이다. 예술촌은 지역 예술인에게 안정적인 창작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창작 의욕을 높이고, 지역 주민과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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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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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각 지자체는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매년 대규모 예산을 들여 축제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축제 남발”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는 무관한 K-pop 가수 공연이나 전국민 노래자랑식의 무대가 주를 이루면서, ‘지역축제’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다. 물론 축제가 지역민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외부인과의 교류를 촉진하며, 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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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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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소인배라는 말보다는 대인배를 좋아한다. 자신에 대한 외부의 평은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른바 군자를 대변하는 단어인 대인배는 쉽게 얻어지는 호칭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부단히 닦지 않고서는 언감생심이다. 수신(修身)은 부지런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심재(心齋)는 만만치가 않다. 동양 사상 대부분은 ‘마음공부’라는 쉬운 표기로 방향을 제시하지만 의외로 방법을 모른다. 명상을 하고 종교를 가져보기도 하고 산에도 올라 보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독서의 효능을 넘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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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3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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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정부가 국민 앞에 나타났다. 3년 만이다. 국가 전반적인 운영에선 길어도 너무 긴 기간이었다. 그만큼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국민은 어려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젠 정상으로의 복구를 향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정부와 한 몸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을 향한 정화 작업 역시 시작되었다. 스스로 빚은 결과이다. 사정기관이 정부의 권력과 결탁을 하면 단 2~3년 만에 국가의 근간을 결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고, 이 뒤에 숨어서 사익을 추구한 무리가 두더지처럼 땅속을 헤집으며 식물 뿌리를 작살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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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6 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