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인사다. 인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이자 최소한의 예의이며, 사회적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요즘 사회에서는 인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SNS가 발달하면서 소통은 많아졌지만, 그 소통 속에 따뜻한 정성과 예의는 오히려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자나 댓글로만 오가는 대화에서는 ‘고맙다’라는 말조차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전문으로 하다 보니 나는 자료 요청을 자주 받는다. 특히 관공서나 단체에서 사진이 필요하다며 부탁해 오곤 한다. 거절하기 어려워 자료를 무상으로 보내주지만, 잘 받았다는 답조차 듣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단순히 ‘고맙다’라는 말의 생략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인사라는 기본적 덕목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전통에서 인사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인간 됨의 바탕이자 ‘예(禮)’의 실천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기본을 놓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로 짚어볼 수 있다. 현대 교육의 한계, 지나친 개인주의, 성과만을 중시하는 시험주의, 그리고 경쟁사회가 주는 압박이 그것이다. 먼저 교육을 살펴보자. 우리 조상들의 배움은 ‘사람다움’을 기르는 데 초점이 있었다. 사서삼경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교과서였다. 공자는 “예(禮)를 잃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는 인사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인간 됨을 지탱하는 근본임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요즘 교육은 시험 점수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인성과 예절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나 있다. 교육 현장에서 인성보다 성과가 우선이니, 인사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풍토는 자연히 약해진 것이다.
둘째는 개인주의의 심화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 개인주의’로 흐르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자기만을 위하는 마음은 도를 잃는다”라고 했다. 인사는 바로 상대를 인정하는 행위다. ‘나 혼자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이 강해지면 인사는 불필요한 형식으로 치부된다. 그 결과 사회적 관계는 점점 느슨해지고, 고마움조차 표현하지 않는 풍토가 굳어진다.
셋째는 시험주의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는 시험 점수로 평가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학, 공무원 시험, 각종 자격시험까지 ‘시험’은 인생의 절대 잣대처럼 작용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지식의 암기와 문제 풀이 능력이 중요하지, 예의나 덕목은 점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인사와 예절은 뒷전으로 밀린다. 공자의 가르침이 강조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덕(德)이었다. “군자는 덕으로써 사람을 감화한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군자보다는 점수 높은 사람을 우선시한다. 이 점에서 시험주의는 인사를 몰락시킨 주범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이겨야 산다”는 논리가 지배한다. 친구도, 동료도 경쟁자일 뿐이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면, 타인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인사는 사치가 된다. 노자는 경쟁의 부작용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는 “도를 아는 자는 다투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일까? 나는 경쟁을 근본 원인으로 본다. 시험주의나 개인주의도 문제이지만, 결국 그것을 관통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 논리다. 시험 역시 경쟁에서 남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수단이고, 개인주의 역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보호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결국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이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하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인사의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공자는 “예는 서로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한다”라고 했다. 인사가 단순히 형식적인 말 한마디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이어주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힘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사(人事)는 사람 사이의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