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요즘 사회를 돌아보면 곳곳에서 질서가 무너지고 도덕적 가치가 붕괴되는 현상을 목격한다. 스마트폰을 든 채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 작은 무례에서부터 공적 영역에서의 거짓과 위선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신뢰를 떠받치는 기둥들이 삐걱거린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다시금 고전으로 눈길을 돌린다. 고전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나 박제된 문헌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반추하고 내일의 길을 모색하게 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학자 리링(李零)의 저서 상가구(喪家狗)’가 다시금 공자와 논어를 세상에 불러내고 있다. 우리말로 흔히 상갓집 개라고 번역되는 상가구를 리링은 집 잃은 개라 해석했다. 공자가 제자들과의 길이 엇갈려 홀로 동문 밖에서 기다리던 장면을, 사람들은 집 잃은 개로 비유한 것이다. 놀라운 점은 공자 자신이 이 표현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성스러움이나 인() 같은 것을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라고 스스로를 낮추며 인정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꾸며지고 성역화된 성인이 아닌, 고독하고 방황하는 인간 공자를 만난다. 그동안 우리는 공자를 지나치게 성인(聖人)으로 포장해 왔다. 제자와 후학들은 공자의 언행을 신격화하여 논어를 일종의 종교 경전처럼 다루었다. 한나라 때는 정치 이념으로서의 유학이, 송나라 때는 도덕 중심의 성리학이, 근대에는 서양 종교의 자극을 받은 구세사상이 공자를 변질시켰다. 그 결과 공자는 인간의 체취가 지워진 채 이데올로기로 남았다.

이런 재해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지금 한국 사회를 보라. 정치권은 편 가르기와 이익 다툼에 몰두하고, 공동체의 기본 도덕은 무너져 내린다. 정직이나 책임 같은 가치는 빈말이 되고, 권력과 돈 앞에서는 체면조차 쉽게 버린다. 이런 현실에서 논어의 구절은 오히려 공허하게 들린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공자를 받드는 방식에는 세 가지 큰 흐름이 있었다. 첫째, 한대의 유가는 공자를 정치적 질서를 유지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둘째, 송대의 유가는 도덕을 중심으로 삼아 성리학으로 집대성했다. 셋째, 근대의 유학은 서양 종교에 자극을 받아 공자를 구세주로 신격화했다. 그러나 세 경우 모두 공자 그 자체보다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념적 장치로 공자가 소환된 것이었다. 시대가 요구한 것은 실제의 공자가 아니라 만들어진 공자였던 셈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무너진 질서와 도덕 속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념의 우상이 아니라, 인간적 고뇌를 간직한 공자다. 그는 권력의 중심이 아닌, 늘 주변부에서 세상을 지켜본 사람이다. 제자들에게조차 외면받던 순간, 그는 스스로를 집 잃은 개라 자인했다. 그러나 바로 그 고독과 방황 속에서 그는 질문을 던지고, 삶의 의미를 해석했다. 현대의 우리는 각자 정신적 집을 잃고 살아간다.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고, 직장조차 영속적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간관계는 피상적이고, 마음 붙일 언덕은 점점 사라진다. 이런 시대에 집 잃은 개로서의 공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꾸밈없는 인간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의 목소리로서의 논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가 흔들릴수록 고전은 더욱 절실하다. 논어는 권위의 경전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을 담아낸 기록이다. 공자가 완전무결한 성인이었다면, 오늘날 우리와 공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도 흔들리고 외로움을 느꼈던 인간이었기에, 지금 우리 곁에 여전히 살아 있다.

세상이 힘들 때면, 때로는 집 잃은 개가 되어 보자. 그 길에서 우리는 비로소 성인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스승으로서의 공자를 만날 것이고, 그 공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묵직한 물음 앞에서 무너진 도덕과 질서의 자리를 다시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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