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요즘 영광군을 비롯한 대한민국 출생률 위기는 단순한 복지와 재정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문화의 총체적 문제로 보인다. 선진국 가운데에서도 출생률 회복에 성공하거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현금 한 방’이 아니라 가족을 둘러싼 제도(돌봄, 노동시장, 세제·현금지급, 주거·보육 인프라)를 함께 설계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스웨덴, 독일 등 유럽 국가 및 일본과 OECD 권고를 바탕으로 나름 정리해 보았다.
첫째,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가족수당과 세제 인센티브이다. 프랑스는 자녀 수에 따른 가족수당을 소득 기준 없이 널리 지급하고, 다자녀 가구에 대해 세제상 유리한 ‘가족 부양 점수’(quotient familial) 체계를 운용해 자녀를 기르는 가구의 가처분소득을 높였다. 단발성 지원보다 지속적·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을 제공해 ‘아이를 키울 수 있겠다’는 기대를 만든 것이다. 둘째는 보육시설의 광범위한 보급과 질적 관리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은 0–2세 보육 접근성을 높이고 공공 보육의 질을 유지해 맞벌이 가정의 육아 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췄다. 이들 국가는 보육료 보조뿐 아니라 보육 공급 자체를 공공이 책임지는 모델을 채택해 여성의 경제활동 지속성을 확보했다. 셋째, 휴가 제도 설계에서 ‘부모 공유’를 유도하는 대응이다. 독일의 엘턴겔트(Elterngeld)나 스웨덴의 장기 유급 육아휴직(부모 간 공유 가능한 기간)은 단순히 산전·산후 여성만 돌보는 휴가를 넘어서 남성의 육아 참여를 늘리고 경력 단절을 줄이는 효과를 냈다. 특히 ‘아버지 몫(부부 할당)’을 둬 남성의 휴직 원인이 생기면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이 쉬워진다. 네 번째는 주거·의료·교육비 부담을 구조적으로 낮추는 장기 투자다. 유럽 일부 국가는 3자녀 이상을 위한 주거 우대, 고등교육까지의 공교육 강화, 보편적 의료와 보건 서비스를 통해 양육비의 ‘예측 불안’을 제거한다. 이는 단기 현금보다 장기적 의사결정(자녀 수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다섯째, 정책의 조합과 노동시장의 개혁이다. OECD 연구들은 단일 대책보다 보육 확대·유급휴가·세제·주거정책을 동시에 강화한 나라들에서 출산율이 더 안정적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경우 이미 가족정책을 확대했지만(보조금과 휴직 확대 등), 부모들이 체감하는 ‘커리어 희생’과 일자리의 불안과 긴 노동시간이 남아 있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다. OECD 권고는 보육 접근성 강화, 육아휴직 보장의 확대와 평등화, 주거·고용 안전망 보강을 함께 추진하는 게 옳다는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와 인센티브의 균형’이다. 각국 사례는 단지 돈을 더 주면 해결된다는 환상을 경계한다. 출산과 육아는 여성 개인의 선택 문제를 넘어서 사회가 노동과 돌봄을 어떻게 분담하는가의 문제다. 정책은 남성의 가사와 육아 참여를 촉진하고, 장시간 노동을 줄이며, 주거비와 교육비의 미래 리스크를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실효를 발휘한다.
신생아 출생률이 전국 상위에 올라 있는 영광군이 정작 인구가 늘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줄고 있는 현상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지역을 위시한 한국이 택해야 할 길은 ‘신생아 수당을 올리는 단발 대책’이 아니라 보육 인프라 확대와 유급 육아휴직의 실효성 확보(특히 남성 참여 유도) 그리고 주거비와 교육비의 구조적 부담 경감과 일터 문화의 변화라는 네 축의 통합적 개혁이다. OECD 국가의 경험은 이를 ‘복합 패키지’로 보강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본다고 말한다. 출산은 한 가정의 결정이지만,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 준 조건이다. 요즘 급해진 정부는 “낳기만 해라. 국가가 어떻게든 키워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방법은 사회적 구조의 혁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