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사람은 모두 소인배라는 말보다는 대인배를 좋아한다. 자신에 대한 외부의 평은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른바 군자를 대변하는 단어인 대인배는 쉽게 얻어지는 호칭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부단히 닦지 않고서는 언감생심이다. 수신(修身)은 부지런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심재(心齋)는 만만치가 않다. 동양 사상 대부분은 ‘마음공부’라는 쉬운 표기로 방향을 제시하지만 의외로 방법을 모른다. 명상을 하고 종교를 가져보기도 하고 산에도 올라 보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독서의 효능을 넘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책이 가리키는 방향은 틀리지 않는다. 현인의 사상을 문자에 담아 수 천 년을 묵혀온 진득한 지식의 액기스는 시대를 넘어 인간의 본성을 어루만진다. 책이란 과연 무엇일까. 예로부터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한 정치인은 손에 책을 쥐고 다시 선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좋은 죽음을 맞았다. 좋은 죽음은 잘 살았다는 삶의 결말이다. 자잘한 마음을 내려놓고 대인배가 되어 죽음을 자연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군자요 대인배다.
5,000년 전, 수메르의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문자는 당시의 종교와 법률, 상업 등을 현재에 전해주고 있다. 시대를 거뜬히 해결한다. 이집트는 파피루스 기록으로 2,500년 전을 전하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페르카멘트(pergamentum, 양피지)를 이용해 당시의 행정과 의학서 그리고 경전 등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당시의 기록이라는 생생함을 우리는 신뢰하고 또한 과거의 지식으로 삼는다. 넘기는 책의 형태인 코덱스(Codex)는 1~4세기 연간에 만들어지고, 5~15세기의 중세 필사 문화로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책의 시대로 진입한다. 이니셜과 삽화로 장식한 사본서적(Illuminated Manuscripts)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서민은 구경조차 힘들었던 고가의 사본서적은 15세기 쿠텐베르크 활자 발명으로 일반화되는 계기를 맞았고, 종교개혁과 과학혁명,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 텍스트로 굳어진 지식과 지혜가 인류 전반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18~19세기의 인쇄술 발전은 모든 분야의 문화를 끌어 올렸고 신문과 잡지, 대중소설 등 매체를 등장시켰다. 20세기엔 오프셋 인쇄와 ISBN이 도입되고 21세기는 eBook과 오디오 북, 디지털 라이브러리 등의 새로운 매체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종이라는 전통을 벗어난 책은 eBook Reader라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냈고 손바닥만 한 리더기에 수백 권의 책을 넣고 다니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꺼내서 읽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 단편적인 지식과 궁금증은 핸드폰 검색이라는 단순 작업으로 바로 해결이 되니 두꺼운 책을 펼쳐놓고 읽는 고전적? 모습이 이제 오히려 어색해지고 있다. 동양은 갑골문의 등장으로 죽간과 목간이 만들어지고, 서양에서 갈대청을 이용한 파피루스를 사용할 때 이미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다. 세계 최초의 인쇄본은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금속활자 역시 세계 최초는 고려의 ‘직지심체요결’이다. 우리 민족은 책과 가장 가까웠던 것이다. 책의 나라 한반도. 하지만 남아 전하는 책은 거의 없다. 그래도 우리 조상이 이루어 놓은 텍스트 문화는 ‘한자’라는 이름으로 재 조명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갑골문은 우리 조상인 은(상)나라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은나라는 동이족이라는 정확한 기록이 전하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문자는 인간 지식의 코어로 작용한다. 전자책이 가상의 서가를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활자 냄새 진득한 종이책을 펼치는 기분을 넘어서진 못할 것이다. 굳이 책의 역사를 돌아보는 마음이 아릿하다. 책을 열면 현인의 마음이 있고 지식이 있고 대인배(君子)가 되는 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