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군민의 날 행사가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다. 직전 군수가 면민의 날을 따로 운영하던 것을 다시 예전처럼 통합 군민의 날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서로 장단점은 있겠지만 하나로 가는 게 옳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매년 가을의 문턱에서 치러지는 군민의 날은 우리 공동체의 에너지를 모으는 큰 축제다. 그동안 체육행사와 문화예술행사를 격년으로 번갈아 치러왔지만, 내년부터는 두 행사를 같은 날 동시에 개최하기로 했다. 지역민의 참여 폭을 넓히겠다는 의도는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체육행사장인 스포티움과 문화행사장인 예술의 전당이 2km 이상 떨어져 있어, 두 분야를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서 엮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예산이 체육행사 쪽으로 집중될 가능성까지 더하면, 문화예술 분야가 들러리로 밀릴 위험 또한 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공연예술이 아닌 시각예술이다. 지역 예술인이 대부분 즐기고 있는 회화, 사진, 서예, 서각, 공예 등을 비롯한 시각예술보다는 통합 행사의 명분 아래 외부 공연팀이나 가수를 초청하는 방향으로 기획이 일방적으로 흘러간다면, 이는 지역 예술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뿌리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군민의 날을 ‘진정한 통합의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각예술을 중심에 둔 문화 비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여주는 무대보다, 보여지는 작품이 지역의 정체성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먼저 운영구조의 균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체육회 주도의 행사위원회에 문화예술인의 실질적 발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협조 기관이 아니라 ‘공동 기획 주체’로서 예술인 협회와 작가 단체가 참여해야 한다. 체육과 예술이 각각의 공간에서 따로 진행되더라도, ‘군민의 날’이라는 큰 브랜드 안에서 같은 무게로 다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산은 항목별로 분리·보전되어야 한다. 문화예술 예산을 체육행사 경비의 부속 항목으로 묶지 말고, ‘시각예술 지원비’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 작가의 전시, 설치미술, 미술교육 체험 프로그램 등이 안정적으로 준비될 수 있다. 이 부분이 확보되지 않으면 결국 외부 공연을 불러 한때의 흥행만 노리는 ‘소모성 축제’로 전락하고 만다. 또한 스포티움과 예술의 전당의 거리 문제는 연결이 아니라 분담으로 풀어야 한다. 두 공간을 억지로 묶는 대신, 역할을 분리하되 상징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술의 전당에는 전시관이 없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방안을 찾아서 전시 예술가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이유다.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적극 참여하는 진정한 군민을 위한 군민의 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람객 수가 아니라, 지역 작가의 참여 비율과 군민의 창작 경험이 핵심 지표가 되어야 한다. 예술을 소비하는 축제가 아니라 지역민이 예술가가 되는 축제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결국, 지역민 날의 진정한 의미는 ‘함께 뛰는 즐거움’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마음’에 있다. 체육은 몸을 움직이게 하지만, 예술은 그 마음을 움직인다. 외부 초청 공연의 박수 소리보다, 우리 지역 작가의 붓끝이 더 오래 남는다. 체육 분야는 운영진의 훌륭한 활동을 바탕으로 모든 행사를 잘 치러내고 있다. 간섭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뒷전 문화인들의 소외감이다. 그동안 체육행사 중심으로 치러졌던 군민의 날이 문화와 잘 어우러지길 시대적 소망으로 간절히 바란다.
새로운 방식의 통합 행사가 지역의 체육과 예술이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며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개인적인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알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