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전 세계 경제질서에 심각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구호 아래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삼지만, 실제로는 동맹국과 파트너를 상대로 관세를 무기화하며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물론, 한국 역시 철강과 자동차 분야에서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진출 한국 기술자 300여 명이 체포되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는 단순한 무역 마찰을 넘어, 미국이 동맹국을 대상으로 국제적 깡패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인식을 준다. 이러한 일방주의적 관세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일부 제조업 보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불신과 반감을 키우며, 결국 미국의 전략적 자산인 신뢰를 무너뜨린다.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무역 질서와 다자주의는 와해되고, 그 결과 글로벌 공급망은 불안정해졌다. 특히 독일, 프랑스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OECD 국가들은 생산과 수출에 차질을 겪고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세계 경제 전반으로 파급되고 있다. 미국이 의도한 자국 우위 전략이 도리어 세계 무역 성장 둔화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셈이다. 문제는 경제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미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지 않기 시작했다. 과거 미국은 동맹국을 규합해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불안정성과 변덕, 일방주의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미국의 몰락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영어권 국가 내에서도 이런 평가가 나타난다.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rules-based order(규칙 기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고, 캐나다 역시 NAFTA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압박을 “bullying tactics(괴롭히기 전략)”로 규정했다.

한국의 입장은 더욱 복잡하다. 지정학적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으나, 경제적으로도 무역 의존도가 높아 일방적 압박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은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 경제적 측면에서는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연합·동남아시아·인도 등 새로운 시장을 적극 개척해야 한다. 또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산업과 같이 한국이 우위를 가진 분야에서 기술 자립도를 높이고 글로벌 공급망 내 핵심 축으로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외교적 측면에서는 다자주의 협력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WTO 개혁 논의,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에서 목소리를 키우며, 한국의 입장을 제도적 틀 속에서 방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과의 관계에서 감정적 대립보다는 실리적 협상이 중요하다. 미국의 압박에 무조건 굴복하거나 정면으로 맞서는 방식은 모두 위험하다. 오히려 기술 협력, 안보 기여, 환경 문제 등에서 공동의 이익을 제시하며 협상의 폭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시에 유럽, 일본, 호주 등과의 연대를 강화해 미국의 일방적 조치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외교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대미 견제가 아니라,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려는 합리적 노력이기도 하다. 미국의 몰락이 당장 현실화되지는 않겠지만, 그 위상은 분명히 흔들리고 있다. 무역 질서의 불안정, 동맹 신뢰의 약화, 그리고 영어권 내부에서조차 제기되는 비판은 이를 방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최선의 길은 미국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스스로 위치를 다변화된 경제·외교 전략 속에서 재정립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중견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축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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